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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 분쟁… 인권 침해의 ‘블랙홀’

입력
2019.03.09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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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로 무장한 분리주의 세력들 독립 외치며 무장 저항 

 이란 발루치족 단체도 활동... 같은 언어 쓰지만 친화성 없어 

 분리주의 운동 5번째 전개... 끝까지 전면 투쟁, 현지서 지지 

지난해 4월24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州) 주도 퀘타에서 발생한 세 차례의 자살폭탄 연쇄 테러로 완전히 부서진 채 전복된 경찰 트럭 주변으로 경찰관과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 공격으로 경찰 6명이 숨지고 15명의 보안 요원이 부상을 당했다. 발루치스탄주는 종파와 종족, 분리독립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퀘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4월24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州) 주도 퀘타에서 발생한 세 차례의 자살폭탄 연쇄 테러로 완전히 부서진 채 전복된 경찰 트럭 주변으로 경찰관과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 공격으로 경찰 6명이 숨지고 15명의 보안 요원이 부상을 당했다. 발루치스탄주는 종파와 종족, 분리독립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퀘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2월 초 인도-파키스탄, 파키스탄-이란 국경 지역은 각종 무장단체들의 쉴 틈 없는 충돌로 요동쳤다. 지난달 13일 이란 동남부 시스탄-발루치스탄 지역에선 이란혁명수비대(IRG)가 자살폭탄 테러를 당해 대원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날 인도령 카슈미르에선 이 지역 주둔군 ‘중앙예비경찰병력(CRPF)’ 차량이 19세 카슈미르 청년의 자살공격을 받아 44명 사망으로 이어졌다. 이란과 인도 모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했다. 각각의 공격을 감행한 조직인 ‘자이시 알 아들(JAA)’과 ‘자이시 에 무함마드(JeM)’가 근거지를 파키스탄 영토 내에 두고 있다는 이유다.

이란 국경까지 이어진 인도 대륙의 ‘월경 테러리즘’은 이제 이 지역 분쟁의 ‘고전 상식’이 됐다. 특정 조직이 거점으로 삼는 영토의 주권 국가가 그 조직의 공격을 기획한 배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관성적인 근거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국경은 복잡하고, 또 매우 유연하다. 통상 소수 커뮤니티에 속하는 국경 지대 주민들은 경계 너머의 주민들과 국경으로만 갈렸을 뿐, 동족일 때가 많다. 이들 분쟁이 훨씬 더 정치적이고, 역동적 변수에 기인한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철저히 간과된 채 사건 자체도 언론에 좀체 오르지 못하는 분쟁 지역이 있다. 바로 이란 시스탄-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와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주(州)다.

실제로 지난달 17일 이 지역에선 파키스탄 보안군에 대한 무장단체의 공격이 발생했다. 군 1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배후를 자처한 조직은 ‘발루치 라지 아조이 상가르(BRAS)’다. 이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무장단체인 발루치해방군(BLA)과 발루치스탄해방전선(BLF), 발루치공화부대(BRG)의 동맹체로 알려진 단체다. 그리고 이튿날 또 다른 공격을 전하는 트윗이 발루치 계정에 띄워졌다. ‘BLF’ 워터마크가 선명한 동영상과 함께, “발루치족 자유투사들이 24시간 안에 또 다른 공격을 감행했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이처럼 발루치족 무장단체들의 활동은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모두 목격된다. 그러나 두 나라 무장단체의 성격과 목표는 완전히 다르다. 이란 쪽의 무장단체는 ‘발루치족을 억압하는 시아파 이란 정권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종파와 종족, 두 변수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티(Anti)-시아’라는 종파극단주의에 경도된 경향이 짙다. 독립이든, 자치든 정치적 목적은 제시한 적이 없다. 반면, 파키스탄 쪽의 무장단체들은 철저히 ‘발루치 민족주의’로 무장한 분리주의 세력이다. 좌파 성향과 세속주의 성격도 강하며 분리독립을 아주 선명한 정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의 최대도시 카라치에 있는 중국 영사관이 분리주의 무장단체 발루치스탄해방군(BLA)의 공격을 받은 뒤, 보안요원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카라치=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23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의 최대도시 카라치에 있는 중국 영사관이 분리주의 무장단체 발루치스탄해방군(BLA)의 공격을 받은 뒤, 보안요원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카라치=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출신 언론인 말릭 시라즈 아크바르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두 지역의 발루치 무장운동 간 차이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했다. “비록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친화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파키스탄의) 좌파 성향 민족주의자 그룹은 이란 쪽 조직을 파키스탄 정보국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다. 이란을 무력화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을 대고, 파키스탄 정보국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란의 발루치 단체들은 파키스탄 그룹을 ‘신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비하한다. 양측이 충돌할 때도 있다. 두 나라의 발루치 단체들 간 이런 갈등은 파키스탄과 이란, 두 나라 정부가 발루치족에 대한 분열통치 정책을 펴는 데 호조건이다.”

물론,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특히 종파적 극단주의 세력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아크바르는 파키스탄군이 극단주의 세력을 고용해 발루치 민족주의 운동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수니파가 주류인 파키스탄 내에 이란(시아파) 혁명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실패했다. 파키스탄의 최대 권력집단인 군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극단주의 세력은 너무 커 버렸고, 친(親)파키스탄 성향 발루치족 인사는 물론, 정부 시설물까지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그동안 발루치스탄이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몸살을 앓아 온 배경엔 그 대가가 적지 않다.

발루치스탄 민족주의자들의 분리주의 운동은 사실 조금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48년 4월 파키스탄이 발루치스탄 칼랏 지역을 강제 복속하면서 무장 저항이 이미 발발했다. 이후 50년대와 60년대, 70년대에도 각각 2~3년씩 분리주의 무장투쟁은 짧지만 꾸준하게 전개됐다. 가장 최근의 무장투쟁은 2004년 즈음, 그러니까 30년 만에 다시 부활한 운동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다섯 번째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최장 시간 동안 전개되는 셈이다. 아크바르는 최근의 투쟁이 현지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고 전했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으로 망명해 버린 여타의 ‘저명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엄혹한 환경을 피하지 않고 여전히 남아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풀와마에서 이 지역 주둔군인 중앙예비경찰병력(CRPF)를 노린 자살폭탄 공격으로 44명이 숨진 데 분노한 인도 시민들이 17일 반(反)파키스탄 구호를 외치며 파키스탄 국기를 찢고 있다. 풀와마=EPA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풀와마에서 이 지역 주둔군인 중앙예비경찰병력(CRPF)를 노린 자살폭탄 공격으로 44명이 숨진 데 분노한 인도 시민들이 17일 반(反)파키스탄 구호를 외치며 파키스탄 국기를 찢고 있다. 풀와마=EPA 연합뉴스

해외로 떠난 지도자들 중에는 인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고 “인도가 발루치인의 망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도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통적 앙숙 관계를 활용, 발루치 이슈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는 행보다. 스위스에 체류 중인 브라함다그 북티 발루치공화당(BRP) 대표가 그런 경우다. 북티는 발루치스탄 주지사까지 지내다 반군으로 변신한 뒤, 2006년 8월 파키스탄 군 작전 중 암살당한 나와브 아크바르 북티의 손자다. 아크바르 북티 암살 사건은 2000년대 중반 발루치스탄 무장투쟁에 대한 폭발적 지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현재 인도가 정치 망명을 허용한 발루치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 무장단체들을 다양한 수위에서 지원해 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파키스탄은 인도가 발루치스탄 분리주의자들을 은밀히 지원한다고 꾸준히 비난해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주장이 과장됐거나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인도령 카슈미르와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이 유사성을 보이는 대목은 그러한 ‘배후 메커니즘’이라기보단 양국 정부의 접근 방식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카슈미르와 발루치스탄 문제를 자국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는 이슈로만 볼 뿐, 자국 군대가 이들 커뮤니티에 자행하는 끔찍한 인권침해 실상에는 아예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두 이슈 모두 단순한 ‘테러리즘’이나 ‘안보 위협’이 아니다. 정치적 문제이고, 따라서 결국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5일, 파키스탄 국경부대에 의해 비무장 발루치족 남성이 무참히 난사 당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유출돼 충격을 안겼다. 스웨덴 소재 인권단체인 발루치스탄인권평의회(HRCB)는 “2017년 2월 25일 발루치스탄 내 메크란 디비젼의 다슈트 구역에서 발생한 일로, 희생자 이름은 라피크 샤사와르”라고 밝혔다. HRCB에 따르면 샤사와르는 2012년 4월 군사작전이 벌어진 고향 도네를 떠나 다슈트의 시골 마을로 왔고, 5년 후 이 곳을 다시 군이 둘러싼 가운데 사살됐다. HRCB는 그의 형제 세 명도 이미 파키스탄 보안군에 의해 이런 식으로 현장 사살됐다고 전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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