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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77%가 깜깜이...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속도 내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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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77%가 깜깜이...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속도 내는 정부

입력
2019.03.0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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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의무 없어 파악 어려워… 시행 땐 전월세 시장 투명화

“임대주택 공급 줄거나 세금 부담 임차인에 전가” 우려도

서울 아파트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아파트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뉴욕주는 2001년부터 집주인이 월세를 놓을 경우 ‘주택 및 지역사회재개발부(DHCR)’에 임대료와 임대조건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고 있다. 주택 면적과 방 개수는 물론, 냉장고, 가구 같은 집기류도 반드시 등록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영국의 임대주택 사업자도 정부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고 싱가포르는 임차인이 국세청 시스템에서 계약에 동의해야 비로소 임대차 계약이 완료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임대인이 전월세 계약을 맺을 때, 주택 매매처럼 계약 기간과 임대료 등 계약 내용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제’(이하 전월세 신고제) 도입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간 소득을 숨겨왔던 임대가 속속 드러나면서 전월세 시장이 투명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임대주택 수가 줄어들거나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등 ‘교각살우’가 될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도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해 제도 도입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임대료 파악이 가능한 임대주택 현황. 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임대료 파악이 가능한 임대주택 현황. 김경진 기자

◇임대 실상 파악되는 주택은 22%뿐

4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06년 도입된 주택 매매 실거래가 신고제로 현재 매매 분야에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등 실거래가 기반의 과세 체계가 구축된 상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임대차 거래는 신고 의무가 없는 탓에 전월세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감정원이 주택임대차정보시스템(RHMS)을 통해 전월세 거래 미신고 임대주택을 분석한 결과, 작년 8월 기준 전국에서 임대 목적으로 사용하는 개인 보유주택 673만가구 중 확정일자나 세입자 월세 세액공제 등을 통해 임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주택은 153만가구(22.8%)에 불과했다. 서울 역시 임대용으로 사용중인 주택 118만5,000여가구 중 임대료 파악이 가능한 임대 주택이 41.7%(49만5,000가구)에 그친다. 지방은 임대 정보가 없는 주택이 79.2%(378만7,000 가구)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더 심각하다.

현재 전월세 임대차 현황은 세입자가 월세 세액공제를 신고하거나 확정일자를 받는 경우나 임대인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자료를 통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 반면 보증금이 소액인 임차인은 보증금 손실 부담이 없어서, 보증금이 고액인 사람은 증여세 조사 등을 피하려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원 노출을 꺼려 임대사업 등록을 하지 않는 임대인도 적지 않다.

◇정부 속내는

전월세 거래 신고제는 ‘전월세 실명제’와 다름없다. 정부 입장에선 물밑에 있던 주택 임대수입을 수면 위로 끌어내 임대차 계약 투명성을 높이고, 임대인의 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다.

임대주택 등록을 하지 않은 2주택자 A씨가 확정일자를 받지 않은 연봉 8,000만원(월세 세액공제 제외 대상)의 임차인에게 월세 100만원(연 1,200만원)에 집 1채를 세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이 임대차 거래는 당국에 자동 파악되지 않아 A씨는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연간 1,200만원의 임대수입을 챙긴다. 하지만 신고제가 도입 되면 A씨는 1,200만원의 월세 수입에서 필요경비(수입의 50%인 600만원)와 공제금액(200만원, 종합소득금액 2,000만원 이하 때 적용)을 제외한 400만원 가운데 15.4%인 61만6,00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전체 거래의 77%를 못 잡는 ‘깜깜이 통계’가 사라지면 현미경 과세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진미윤 주택토지연구원 박사는 “2006년 매매 실거래가 제도 도입으로 다운계약서가 감소하고 양도세 탈루가 줄었듯, 향후 임대시장 투명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역시 제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주택 임대차 시장은 실태 파악도 안돼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정부와 공공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대차 정보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최근 발생하는 ‘역전세난’ ‘깡통전세’처럼 다양한 상황에 보다 효과적이고 정확한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적지 않다.

정부는 다만 제도 도입 시기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 부동산 거래 절벽이 장기화하자 도입의 적기를 저울질하는 모양새로 해석된다. 제도 도입을 위해선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거래 신고 대상에 임대차 거래를 추가하는 입법 작업이 필요한데, 국토부는 앞서 일각에서 제기한 ‘상반기 중 정부 입법 가능성’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제도 도입 의지가 내심 강한데다, 당국이 의원 입법을 통해 법 개정을 추진할 거란 시각도 있어 ‘입법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향후 전월세 가격이 떨어지고 매매 시장도 안정을 찾는다면 세 부담을 임대료에 전가하거나 매매 시장이 동요할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제도를 추진할 여지를 남겨두는 발언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해외 주요국의 주택 임대차계약 신고제 현황
[저작권 한국일보] 해외 주요국의 주택 임대차계약 신고제 현황

◇만만찮은 부작용 우려

하지만 한편에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늘어난 세 부담을 전가하면서 전월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역전세난 상황에선 당장의 영향은 적겠지만 결국엔 임대인이 늘어나는 세 부담을 임대료에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민간 임대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 집값이나 전셋값에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시차를 두고 민간 임대주택 시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장 충격과 초기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국 단위 전면 시행보다는 서울 또는 투기과열지구 등 일부 지역에 제한적 시행 방안도 거론된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적절한 과세특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신고 의무 지역을 순차적으로 확대하거나 보증금이 적은 서민용 임대주택은 신고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월세 거래 신고가 의무화 되면 전월세 임대료 인상을 연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 현 정부의 숙원사업 도입도 탄력을 받게 된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 2017년 7월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사업자 등록제를 먼저 정착시키고 단계적으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임대주택 공급이 줄고 주택의 질이 더 떨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함 랩장은 “임대료 인상이 제한되면 임대인이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외국은 임대주택 재고가 많아 민간임대가 위축돼도 공공임대로 수요를 흡수하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임대 재고가 적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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