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목성 ‘제우스’의 위성 이름이 ‘이오’인 이유

알림

목성 ‘제우스’의 위성 이름이 ‘이오’인 이유

입력
2019.03.02 16:07
수정
2019.03.02 21:18
0 0
지난해 미 항공우주국 나사가 공개한 목성의 대적점 상공을 비행중인 주노 우주선 상상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미 항공우주국 나사가 공개한 목성의 대적점 상공을 비행중인 주노 우주선 상상도. 로이터 연합뉴스

목성(Jupiter)의 4대 위성 중 목성과 가장 가깝고, 태양계에서 4번째로 큰 ‘이오’(Io)에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오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 신인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다가 암소로 변한 여자의 이름이다. 국제천문연맹(IAU)의 천체 명명 규정에 따르면 제우스 신을 상징하는 목성의 위성들에는 모두 제우스 신의 애인 또는 자손의 이름만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이오의 지형에는 모두 불과 화산, 또는 단테의 인페르노(지옥불)와 관련된 이름이 붙여진다. 이오에 활화산 수백개가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천문학자 스콧 셰퍼드가 목성의 위성들에 대한 ‘이름 공모’ 글을 올리면서 IAU의 기발하면서도 ‘덕후(마니아ㆍnerdy)’스러운 명명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IAU가 “붐비는 우주 속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면서 1919년 이래로 행성과 위성 등 천체의 학술명을 공식적으로 지정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천문학자 스콧 셰퍼드 박사. 카네기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천문학자 스콧 셰퍼드 박사. 카네기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카네기연구소가 지난해 7월 목성의 위성 12개를 새로 발견하면서, 지금까지 발견된 목성의 달은 총 79개다. 셰퍼드 박사는 최근 이 중 5개에 대해 ‘#NameJupitersMoons’(#목성위성에이름을)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이름을 제안해달라고 지난달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다만 IAU의 규정에 따라 그는 조건에 부합하는 극소수의 이름만 후보로 검토하게 됐다.

‘목성 위성’에 대한 원칙은 이런 것들이다. 먼저 그리스나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이름, 그 중에서도 제우스 신의 후손이나 애인의 이름만 사용할 수 있다. 영문으로 16글자 혹은 그 이하여야 하고,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또 불쾌하거나, 상업적이어서는 안 되며 지난 100년간의 정치ㆍ군사ㆍ종교적 행동과도 무관해야 한다.

미국 카네기연구소에서 지난해 7월 발견한 목성 위성 5개의 이름을 붙여달라는 글을 올리면서 첨부한 설명도. 카네기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카네기연구소에서 지난해 7월 발견한 목성 위성 5개의 이름을 붙여달라는 글을 올리면서 첨부한 설명도. 카네기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끝이 아니다. 생존하고 있는 인물 이름이 들어가서도 안 되며, 이미 존재하는 다른 위성이나 소행성의 이름과 비슷해서도 안 된다고 WP는 전했다. 또 만약 해당 위성이 순행 위성, 즉 자신이 도는 행성의 회전 궤도와 동일한 방향으로 운동하는 경우에는 ‘a’로 끝나야 하고, 반대 방향으로 도는 역행 위성일 경우에는 이름이 ‘e’로 끝나야만 한다. 이 수많은 조건들을 나열한 WP는 “참 쉽죠?”라고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소의 천문학자 개리스 윌리엄스는 WP에 “이런 엄격한 명명법은 우주를 연구할 때 혼란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초 IAU의 공식 명명법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태양계는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메리 아델라 블라그의 젊은 시절. 위키피디아 캡처
영국의 천문학자 메리 아델라 블라그의 젊은 시절. 위키피디아 캡처

무질서한 태양계에 질서를 부여한 것은 그동안 가장 많이 연구됐던 천체인 ‘달’에 대한 발견들을 취합해 정리한 영국의 여성 천문학자 메리 아델라 블라그였다. 그는 달과 관련한 그동안의 모든 발견들을 꼼꼼하게 추척, 겹치는 이름들을 비교해 1913년 목록을 정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IAU는 1935년 달의 지형에 대한 최초의 공식 목록를 만든다.

이후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천체에 대한 발견이 이어지면서 소규모 인력으로 추적해서 정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자 IAU는 명명을 전담하는 팀 ‘천체명명소위원회(WGPSN)’를 만들었다. WGPSN의 회장 리타 슐츠는 WP에 “보통 탐사선으로부터 새로운 천체 이미지가 전달되면, 탐사팀이 보통 자신들이 발견한 지형에 맞는 이름 테마나 카테고리를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올해 1월 심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 소행성인 ‘울티마 툴레(MU69)’에 3500km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밝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올해 1월 심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 소행성인 ‘울티마 툴레(MU69)’에 3500km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밝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대표적인 예로 2006년 1월 발사돼 2015년 명왕성에 최근접 비행에 성공하고, 올해 초에는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 소행성에도 접근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심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 팀은 프로젝트의 목적에 걸맞게 새로 발견한 천체나 지형들에 대해 지하 세계, 대모험이라는 테마를 정했다.

그래서 명왕성에 있는 6㎞ 높이의 얼음산은 네팔의 산 등반가 텐징 노르게이의 이름을 딴 ‘텐징 몬테스(산)’이 됐고, 명왕성의 위성 카론의 한 흑점은 ‘모르도르(어둠의 땅)’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WP는 “우주는 ‘반지의 제왕’ 속 이름들로 넘쳐난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스 박사는 이 같은 명명법에 대해 “각 행성에 다른 테마를 주면 이름이 겹칠 가능성이 낮다”면서 수천 수만개의 천체와 지형 사이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나로 묶는 효과도 있는데, 만약 신화를 알고 있다면 이름만 들어도 어떤 천체에 있는 지형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지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다만 태양 주변을 돌지만 행성이나 위성이 아닌 ‘소행성’에게는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이름을 붙일 있다. 불쾌하거나 지나치게 상업적ㆍ정치적이지만 않으면 ‘어떤 이름’이든 가능한 것. WP는 “이 우주의 돌덩이들은 수학자, 화학자, 공학자의 이름뿐 아니라 고등학교 선생님, 비틀즈 멤버, 영국 작가들인 브론테 세 자매, 말랄라 유사프자이(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행성 명명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건 아니다. 80년대 천문학자인 제임스 깁슨은 새로 발견한 소행성에 자신의 ‘고양이’인 ‘미스터 스팍’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윌리엄스 박사은 “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 일이 생긴 뒤부터는 IAU가 일부 제한을 두고는 있지만, 한번 정해진 이름은 바꾸지 않는 탓에 소행성 2309 ‘미스터 스팍’은 여전히 태양을 돌고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