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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만한 패션 질주 알렉산더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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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만한 패션 질주 알렉산더 맥퀸

입력
2019.03.01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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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이 199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눈' 패션쇼가 끝난 후 런웨이를 걸으며 인하사고 있다. ©Rex Featuesㆍ을유문화사 제공
알렉산더 맥퀸이 199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눈' 패션쇼가 끝난 후 런웨이를 걸으며 인하사고 있다. ©Rex Featuesㆍ을유문화사 제공

알렉산더 맥퀸

앤드루 윌슨 지음ㆍ성소희 옮김

을유문화사 발행ㆍ608쪽ㆍ2만5,000원

영국 런던 변두리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소수자였다. 고만고만한 교육을 받았고, 전문대 졸업 후 생업에 뛰어들었다. 서민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컸던 청춘은 곧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판 삼아 패션계 상층부로 뛰어올랐다. 스물 일곱에 명품 브랜드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가 됐고, 패션쇼를 열 때마다 파장을 일으켰다. 사생활도 뜨거웠다. 직설적인 성격에 섹스중독자였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흔 한 살에 스스로 생을 접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패션 브랜드가 되어 사람들의 옷과 신발과 가방 등에 여전히 남아있다. 알렉산더 맥퀸(1969~2010)은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기억해야 할 삶, 패션 문외한이라도 들여다 볼만한 생을 살았다.

영국 저널리스트가 쓴 ‘알렉산더 맥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을 단거리 선수처럼 내달리다 사라진 맥퀸의 삶을 지면에 복원한다.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글이 맥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상세히 전한다.

맥퀸의 유년은 빛보다 어둠이 훨씬 강했다.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맥퀸이 태어날 무렵 트럭운전사였던 아버지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다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병원에 있었다. 어머니가 청소로 가계를 도왔다. 퇴원한 아버지가 택시운전대를 잡으며 가계가 좀 폈다. 런던 동부 스트랫퍼드에 방 네 개짜리 임대 주택을 얻었으나 6남매를 포함 여덟 식구가 함께 보내기엔 비좁았다. 아버지는 근면하면서도 완고했다. 창의성이란 어떤 식이든 완전히 시간 낭비라 여겼고, 꿈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맥퀸은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그나마 높은 점수를 받은 과목은 미술이었다. 어려서부터 옷에 대한 관심은 유난했다. 누나들이 외출할 때 맥퀸에게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 물었고, 그는 조언을 즐겼다. 열 두 살 때부터 패션 서적을 뒤적였고, 중학교 시절 수업 시간엔 옷만 그렸다. 어린 시절 취미는 집 주변 새 구경하기. 그가 나중에 패션에 새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한 배경이다.

유년시절은 평생에 남을 트라우마도 안겼다. 아홉 살, 열살 무렵부터 매형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매형은 맥퀸이 중학생 때 심장마비로 죽었다. 매형이 죽기 바랐을 맥퀸이었겠지만 매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죄책감을 느꼈을 만도 하다.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표지. 을유문화사 제공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표지. 을유문화사 제공

“이스트 런던의 수다스러운 망나니”(맥퀸은 종종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전문대를 마친 후 런던 맞춤양복점 앤더슨 앤드 셰퍼드에 입사한다. 7년간 이어질 수습 기간의 시작이었다. 손재주를 발휘하며 재단술을 빠르게 습득했다. 일본계 디자이너의 회사 타츠노 코지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일하며 다양한 복식을 익혔다. 영국으로 돌아와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스쿨에 입학한 과정은 마틴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교수는 맥퀸의 스케치만 보고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 맥퀸의 석사과정 입학을 허락한다. 맥퀸은 졸업 작품전에서 ‘희생자를 쫓는 잭 더 리퍼’를 선보인 후 하룻밤 사이 인생이 바뀐다. 그의 작품에 매료된 패션전문지 보그의 이사벨라 블로가 후원자를 자처하고, 이윽고 맥퀸은 패션계 신성이 된다.

책은 맥퀸이 창작의 근원으로 삼았던 그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의 가계는 풍요, 품격, 고귀와는 거리가 멀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투쟁이 대를 이었다. 맥퀸의 어머니가 취미 삼아 조사한 집안의 가계도에 따르면 선조의 뿌리는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의 맥퀸 가문이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맥퀸은 스코틀랜드 혈통에 집착했다. 비극과 유랑과 저항의 역사가 지닌 마력에 끌렸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마음 쓰이고, 상처 받은 내용의 이야기에 매혹됐던 맥퀸의 삶은 그의 패션에 반영됐다. ‘택시 드라이버’와 ‘하일랜드 강간’처럼 피학적인 제목의 패션쇼에서 파격적인 작품들이 선보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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