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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아파르트헤이트는 평화가 아니다

입력
2019.03.0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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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2017년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엔 워싱턴DC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표부도 폐쇄했다. 미국은 또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조차 중단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미국은 진정 평화를 추구하길 원하며 유일한 걸림돌은 팔레인스타인들이 느끼는 거부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그 동안 트럼프 정부에 협조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2017년 40차례나 회의를 열어 트럼프 정부의 모든 질문에 답을 했고 ‘두 국가 해결론’(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자는 주장)에 기반한 평화와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 특사단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거부했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수반의 워싱턴DC 방문 바로 전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했다. 이유가 무엇(이념적 편견이나 외교적 경험 부족 또는 두 가지 모두)이든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중동 평화를 구축하는 데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을 모두 무너뜨렸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 제이슨 그린블랫 백악관 국제협상특사,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은 이념적으로 사실상 이스라엘 편에 서 있다. 지난해 펜스 부통령의 이스라엘 국회 연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신성한 의무’를 가졌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태도는 지난 2 년 간 이 지역에서 ‘극단주의자의 강화’라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올바르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는 전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 소통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의 이행, 여러 국가의 참여를 통한 평화 계획 실천 등도 촉구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의 해법은 비현실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마치 부동산 사업의 일부로 생각하는 듯 하다. 외교 사절단 폐쇄, UNRWA 원조 중단, 팔레스타인 병원에 대한 지원 취소, 팔레스타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철회 등을 통해 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재산 정도로 보고 있는 듯하다. 팔레스타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엄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고 이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요구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두 국가 해결론’은 불법적 현실의 수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갈등과 분쟁을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두 국가 해결론’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면서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시스템’이라는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전 세계 정상들이 트럼프 정부에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과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미국 주도로 ‘중동 평화와 안보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가 열렸지만 팔레스타인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팔레스타인이 참석한 가운데 논의돼야 한다. 우린 다른 이에게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는 양자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고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골란 고원과 팔레스타인의 동 예루살렘을 포함해 1967년 이후 점령한 모든 아랍 영토에 대한 통제를 끝내야만 이뤄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팔레스타인이 운영하는 예루살렘 병원에 대한 지원 중단이나 장학금 삭감으로 팔레스타인이 항복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反)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 운동의 영웅인 데스몬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주교가 한 말을 미국에 상기시켜 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방법으론 안보와 안전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궁극적으로 오로지 정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정의는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개념이 아니다. 정의는 법을 존중할 때 시작된다. 트럼프 정부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부인하고 있다. 정말 신성한 예언을 성취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 단순히 유권자들 중 극단주의자들을 달래려는 용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단일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시민들을 위해 점령을 종식시키거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외교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선택은 오로지 아파르트헤이트일 뿐이다.

국제사회는 과연 중동의 미래를 트럼프 정부의 손에 맡기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이제 답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트럼프 정부가 더 이상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를 하기 힘든 만큼 나머지 국제 사회가 깨어나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해결책을 기다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심화시킬 뿐이다.

사에브 에레카트 PLO 집행위원회 사무총장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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