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은 이충재 수석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임정의 정신은 통합”이라며 “기념관에는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 모든 임정 참여 인사들을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2019-02-25(한국일보)

우리 민족과 국가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3ㆍ1운동의 열기는 한 달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기반이 됐고, 해방과 정부 수립의 원동력이 됐다. 3ㆍ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함께 기리는 것도 이런 연유다. 올해를 각별하게 맞이하는 이로 이종찬(83)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로 더 잘 알려진 그는 DJ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끝으로 현역 정치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역사 바로 세우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일원으로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요즘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고 우리 선열들의 지혜와 통찰력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일제 통계만 봐도 2,000만 인구 중에 200만 명이 만세 시위에 동참했다. 국민 10명 중 한 명꼴이니 엄청난 규모다. 이 많은 사람이 세계 평화를 외치고,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의 노력을 보며 우리 민족의 저력을 실감한다.”

-임정 100주년인 올해 기념관 완공을 목표로 2015년부터 준비했다는데 왜 늦어진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한 것을 보고 독립유공자들이 죽기 전에 임정기념관 만들어진 것을 봤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했다. 그래서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을 찾아가 요청을 하고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런데 얼마 뒤 보훈처장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의아해했는데 건국절, 국정 역사교과서 등 진영 논리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건립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기념관 건립 진행 상황은 어떤가.

“현재 설계를 보완 중인데 조만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서대문형무소 옆 서대문구의회를 이전하고 그 자리를 제공했다. 당시 의회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임정 100주년에 서둘러 개관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100년, 1000년 가는 튼튼한 건물을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새로 짓기로 했다. 지상 5층, 지하 1층(연면적 6,236㎡) 규모로 2020년 완공 계획이다.”

-임정기념관 건립에 담길 기본 개념이 진영의 논리가 아닌 통합의 논리라고 들었다.

“사상과 이념, 세대와 지역, 성별 등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정신이다. 그에 맞춰 어떤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임정 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은 이미 기념관을 갖고 있다. 임정에 참여한 사람이 2,000명가량 되는데 이들 모두를 영웅으로 기려야 한다. 이념에 관계없이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까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모시려 한다.”

1945년 해방 직후 고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중국 상해공항에 모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 가운데 꽃다발을 건 사람을 중심으로 왼쪽에 조완구,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오른쪽에 눈물을 훔치는 이가 우당 이회영의 동생인 성재 이시영(초대 부통령)이고, 백범 바로 앞 소년이 이종찬이다. 우당기념관 제공
-영화 ‘암살’과 ‘밀정’에 등장했던 약산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지정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됐다. 국가보훈처 자문기구가 올해 3ㆍ1절을 계기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권고했으나 보훈처가 유보했는데 역사학계에서는 전향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남북 정부 양쪽에서 버림받았다. 남쪽에서는 그가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남한에 남은 가족들을 보도연맹 사건 때 학살했고, 북쪽에서는 그를 중국 국민당의 스파이로 몰아 숙청했다. 그가 월북한 것도 친일파 경찰 노덕술의 치욕스러운 고문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일생을 항일투쟁과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인물을 남북 모두가 배척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며칠 전 정부가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을 3등급에서 1등급으로 높였다. 그의 공적과 상징성에 걸맞지 않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인데, 현재 정부의 서훈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우당 이회영과 임정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도 3등급에 그치고 있다.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낸 아나키스트들을 보면 대부분 서훈이 하나씩 아래다. 부친은 생전에 ‘그런 공적을 드러내고 다투지 말라’는 유지를 남겨 불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서훈이 제대로 안 된 것은 사실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이 1960년대에 시작됐는데 독립운동 자료가 많이 사라지고 연구가 부족한 것도 혼란을 유발한 이유다.”

(정부는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데 공적이 있는 인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장(1등급)과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 5단계로 돼 있다.)

-지난해 가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수십 년간 보훈연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서훈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3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보도도 나오지 않았나.

“가짜 독립유공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본인이 작고한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후손들이 거짓 공적을 만들어 부친을 유공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 주로 친일파 소행이 많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서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가짜를 찾아내는 것도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가짜 독립유공자 색출을 위해 전수조사에 나선다니 다행이다.”

-올해부터 임정 기념일을 4월13일에서 4월11일로 옮기기로 한 결정이 위원회 건의로 이뤄졌다던데.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날은 1919년 4월 11일이다. 4월 10일 밤 10시에 개최해 밤새 난상토론 끝에 4월 11일 오전 10시에 회의를 마쳤다. 그 발표를 4월 13일에 했는데 일제가 이에 맞춰 표시한 것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1922년 임정에서 만든 ‘대한민국 4년 역서’라는 달력에 4월11일이 국경일로 표시돼 있고, 임정 인사들이 해방 뒤 서울에서 연 기념식이 4월 11일이라는 사실 등이 드러나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가 올해 기념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게 되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임정 100주년을 앞두고 해묵은 건국절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하나.

“소모적인 논란이다. 대한민국 국호는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졌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그 전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48년 정부 수립의 의미를 폄하할 수는 없다. 임시정부를 만들 때도 임시적인 정부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독립 후에 정식 정부를 세운다고 명시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건국 4252년이라고 돼 있는 점을 떠올리면 건국절 시비는 부질없는 논란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태극기 부대가 물의를 빚었다. 일각에서는 태극기가 극우세력의 전유물이 됐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좌파, 우파가 있을 수 없다. 그분들을 완전히 배척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성조기는 물론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나오는 것은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다. 이는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극기를 어떤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얼마 전 3ㆍ1운동을 ‘혁명’으로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계와 독립운동단체에서도 그런 견해가 많지 않은가.

“3ㆍ1운동을 통해 국호가 새로 정해졌고, 국체도 제국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뀌었다. 큰 가치의 전환이 이뤄졌으니 혁명이라는 명칭이 맞다. 혁명이라는 게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도 한동안 ‘3ㆍ1혁명’이라고 불렀으나 혁명이라는 용어가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측근들의 말에 넘어가 명칭을 달리했다.”

-남북 정상이 당초 약속했던 3ㆍ1운동 남북공동행사가 무산돼 아쉽지만 김정은 위원장 답방이 조만간 이뤄지면 임정 100주년 기념식이 더 뜻깊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쳐 평화공존 체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남북이 함께 3ㆍ1운동 기념식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임정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4월 11일 두 정상이 함께 참석하면 매우 의미가 클 것이다. 물론 임정을 부르주아 민족운동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어 그때 답방하더라도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긴 하나 우리로서는 얼마든지 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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