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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 보이콧’ 최약체 뉴질랜드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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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 보이콧’ 최약체 뉴질랜드 때리기

입력
2019.02.21 15:39
수정
2019.02.21 20:5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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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플리 전 총리 명의 도용 ‘중국 찬양’ 기고문 논란

중국인들 여행 취소, 공동행사 연기 등 갖가지 압박

1997~1999년 뉴질랜드 제36대 총리를 지낸 제니 시플리. 위키피디아 캡처
1997~1999년 뉴질랜드 제36대 총리를 지낸 제니 시플리. 위키피디아 캡처

중국 관영매체가 뉴질랜드 전 총리의 명의를 도용해 ‘중국 찬양’ 기고문을 게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서방국가의 ‘화웨이 봉쇄’ 대열에 뉴질랜드가 합류하면서 양국 관계 급랭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서방국가 중 국력도 가장 약하고 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뉴질랜드에 중국이 본보기용으로 보복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8일(현지시간) 인터넷 영문판에 제니 시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의 이름으로 ‘우리는 중국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은 중국 공산당의 양성평등, 빈곤퇴치 정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에 대해 “우리가 지금껏 접해 온 가장 훌륭한 구상들 중 하나”라고 찬양했다.

이에 “왜 그렇게까지 중국을 찬양하나”, “뉴질랜드의 이권을 팔아치운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시플리 전 총리는 현지 언론에 “지난해 12월에 이뤄진 한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이라면서 자신은 기고한 바 없다고 급히 해명했다. 인민일보는 이틀 뒤 ‘인터뷰에 기초해 작성된 글’이라는 문장을 슬며시 덧붙였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앞에 출력된 화웨이 3D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앞에 출력된 화웨이 3D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이는 뉴질랜드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5세대(5G) 통신망 구축에서 화웨이를 일단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과의 긴장이 높아진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의 앤 마리 브래디 국제관계학 교수는 “그 글은 고위급 승인 없이는 게재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어리석게도 전 총리의 말을 빌려 정부를 압박하려고 한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설명했다.

이미 중국은 갖가지 수단으로 ‘뉴질랜드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화웨이와 관련한 보복 조치로 중국인들이 뉴질랜드 여행을 취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달 예정된 ‘2019 중국-뉴질랜드 방문의 해’ 공동행사가 일정 문제로 갑자기 연기됐고, 9일에는 상하이로 향하던 에어뉴질랜드 항공기의 착륙이 불허되어 돌연 회항하기도 했다.

중국의 잇따른 거친 조치는 결국 효과를 내고 있다. 뉴질랜드가 ‘화웨이 봉쇄’ 공조에서 한발 물러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루 전 보이콧 대열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비친 영국에 이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19일 “아직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어 뉴질랜드는 미국과 기밀을 공유하는 5개국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속하지만, “(화웨이 장비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며 미국에 거리를 뒀다.

뉴질랜드 국가별 중국 수출 비중. 그래픽=송정근 기자
뉴질랜드 국가별 중국 수출 비중.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을 연상케 하는 상황 속에서, 뉴질랜드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건 대중 경제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탓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뉴질랜드의 최대 수출국으로 그 규모는 전체 수출량의 4분의 1(24.9%)에 달한다. 특히 관광업과 낙농업의 비중이 높은 뉴질랜드로서는 외국인 관광객의 15%, 유제품 수출의 4분의 1에 달하는 중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WP는 이에 대해 “뉴질랜드는 독립적인 외교 방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그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맞추느라 가운데 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우방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서로 패권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양국의 눈치만 보는 처지라는 것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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