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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반려동물은 사람과 사는 게 행복일까

입력
2019.02.2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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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갓 들어가 국어책을 펼치면, 그곳에는 철수 영희와 함께 ‘바둑이’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때까지 우리나라 개에게는 이름이 없었다는 점이다.

누렁이, 백구, 검둥이 등이 있었지만 이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털 색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즉 누런 개, 흰 개, 검은 개 정도의 표현인 셈이다. 바둑이는 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바둑판에 흑과 백이 섞여 있는 것처럼 얼룩덜룩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메리나 쫑 또는 해피나 뽀삐 같은 이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명칭이 아니며, 실제로 이런 이름은 외국 견종에게만 붙었더랬다. 즉 당시까지 우리의 보편적 인식에서 개는 가축의 범주에만 존재했던 셈이다. 해서 개 역시 황소, 얼룩소, 칡소와 같은 색깔 구분에 따른 명칭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1.5세대가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인구는 무려 1000만에 이른다. 또 반려동물의 개체 수 역시 35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세대 만에 바뀐 것은 비단 양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이들은 가축에서 분리된 뒤 애완동물과 반려동물의 단계를 거쳐 최근에는 가족 구성원으로까지 위치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려동물에게 재산이 상속되었다는 뉴스도 그리 놀라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빠른 변화는 세대와 문화에 따른 다양한 관점 차이에 의한 사회적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연로한 분들에게 반려동물이 아직까지도 속칭 ‘개 값을 치르면 된다.’는 가축의 범주에 있다면, 젊은 분들 중에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판단기준을 가진 분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 속을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치관에 따른 충돌이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보다 많은 양보와 이해를 촉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생명윤리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반려동물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더는 감당하기 곤란할 때 유기하는 부분이다. 이는 생명을 수단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윤회론에 바탕을 둔 불교의 생명윤리는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윤회론은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인 평등에 기초한다. 이는 어떤 생명체도 함부로 수단화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관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역시 독립된 영혼을 갖춘 나와 대등한 생명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면, 책임지기 어려운 시작과 선택은 한결 줄어들 것이다. 물론 결혼한 부부도 각자의 행복을 좇아 이혼하는 현실에서, 선택에 따른 무한책임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다만 이를 통해 좀 더 신중해지고 진지해질 것을 촉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될 경우, 부득이하게 관계 정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입양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것 역시 용이해질 것이다.

또 현대에 들어 많은 반려동물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제 한 번 정도는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장자(莊子)’의 ‘추수(秋水)’편에는 ‘죽어서 영검함으로 대우받는 거북보다, 살아서 진흙탕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거북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도 주인이 출근한 뒤 혼자 남아 고독의 빈 방에서 장수하기보다는, 단명할지라도 자기들끼리 어울려 뒹굴다 죽는 것을 더 행복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을까?!

인간의 동물에 대한 선택은 동물 자체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언제나 ‘인간 선택의 오류’를 내포한다는 부분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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