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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ILO 기본협약 비준, 국민경제 사활 달렸다

입력
2019.02.2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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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법개정 방향을 제시한 공익위원의견을 작년 11월 20일 발표하였다. 4개월에 걸친 논의에도 불구하고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대통령의 공약사항 이행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ILO 기본협약 비준의무를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명시하였다. 우리나라는 7년 넘게 FTA 위반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은 작년 12월 21일 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분쟁절차를 개시하였다. EU가 우리나라의 FTA 위반을 좌시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EU와 일본이 체결한 경제협정이 올해 2월 1일부터 발효된 상황에서 본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국가의 신인도는 추락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1997년 IMF 사태 때 이미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약속이 아니라 조약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익위원 의견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한가하게 따질 때가 아니다. FTA를 위반한 채로 수출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다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한정애 의원만이 공익위원의견을 반영한 법안을 작년 12월 28일 국회에 제출하면서 이 중대한 문제에 책임 있게 응답하였다. 한 의원의 법안은 국제노동기준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우리나라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은 합리적인 안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계 반응은 다소 의외이다. 노동계는 분쟁을 개시한 EU 대표단 앞에서 이 법안이 “국제노동기준에 반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한 “부족한 수준을 넘어 후퇴한 법안”이라고 비판하였다.

비판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종업원이 아닌 조합원이 사업장에 출입할 때 일정한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은 국제노동기준 위반이다. 둘째, 사내하청 등 비정규근로자는 종업원이 아니기 때문에 조합활동이 제약되어 지금보다 후퇴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전혀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다. 첫째,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이해 부족이 엿보인다. ILO 제135호 협약은 기업내 조합활동은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 의원 법안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ILO 제87호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영국,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이에 대해 ILO가 ILO 기준을 위반한다고 판단한 적은 없다.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 의원안은 ILO 기준에 따라 노조 가입 자격 제한을 모두 없앴다. 해고자든 구직자든 모두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노동계의 주장대로라면 구직자로만 조직된 노조도 사업장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어야 ILO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인데, 상식에 반하는 그러한 ILO 기준은 당연히 없다. 셋째, 사내하청근로자의 조합활동이 지금보다 제한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법안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노동계의 비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영계 측 공익위원과의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는 국내의 특수한 현실 때문에 ILO 기준에 완전하게 부합하지 않은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불만이 있다면 경사노위에서 당당하게 주장하면 될 일이다. 참여 자체를 거부하면서도 우리나라의 FTA 위반을 추궁하고 있는 EU 대표단에게 호소하는 것은 솔직히 민망하다.

EU는 4월말까지 ILO 기본협약 비준의 구체적인 결과물을 제시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기한을 놓치면 우리는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다. 이로 인한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제출된 법안에 대해 국회는 신속하게 답해야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법개정은 노사만의 문제도, 여야의 정치문제도 아니다. 수출주도 국민경제의 사활이 달린 문제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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