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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6개월’ 노사 난제 하나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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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6개월’ 노사 난제 하나 풀었다

입력
2019.02.19 21:03
수정
2019.02.20 00: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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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출범 3개월 만에 첫 결실]

3개월서 확대…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화

‘노사 합의’ 의미 무겁지만, 국회서 최종안 통과까지는 험로

19일 서울 경사노위 브리핑실에서 탄력근무 관련 합의문이 발표된 후 대표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총회장,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배우한 기자
19일 서울 경사노위 브리핑실에서 탄력근무 관련 합의문이 발표된 후 대표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총회장,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배우한 기자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지난해 11월 22일 출범 이후 첫 노ㆍ사ㆍ정 합의를 이끌어 냈다. 양보와 타협의 정신으로 대립적 노사 관계를 극복할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번 합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두 배 늘어나게 된다. 대신 근로자의 임금이 줄지 않도록 하고 휴식권을 보장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합의안은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여야 모두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만큼 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 개정 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노동시간위) 제9차 전체회의를 열고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을 내놨다. 노동시간위는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경영계가 어려움을 호소해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0일 발족했다. 처음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노사는 9차례 전체회의를 거치며 입장 차를 좁혔고, 18일 열린 제8차 전체회의에서 논의 시한을 약속보다 하루 더 연장하는 등 막판 조율을 거쳐 합의안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탄력근로제 6개월로 연장하고 보완책 마련

합의안은 경영계가 요구한 단위기간 연장과 도입요건 완화, 그리고 노동계가 요구한 오ㆍ남용 방지 대책을 함께 담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업 운영과 근로자의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합의안에 따르면 현재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한도가 6개월로 두 배 늘어난다.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기만 하면 근로자에게 한 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단위기간이 3개월(13주)일 때는 연속으로 주 64시간을 근무시킬 수 있는 주가 최대 20주인데, 6개월(26주)로 늘어나면 40주 연속으로 주 64시간 근무를 시킬 수 있다.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시간이 길어지면 근로자의 건강에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사는 단위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때는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의무화했다. 가령 오후 8시에 퇴근한 근로자라면 이튿날 오전 7시까지 휴식이 보장된다.

임금 보전 방안도 강화됐다. 탄력근로제 실시 기간 중에는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해 지급되는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0%)이 지급되지 않아 경우에 따라 실시 전보다 임금이 줄어드는 사례도 있었다. 임금이 줄지 않도록 보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있었지만 강제력이 없어 유명무실했다. 노사정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는 사용자에게 보전수당, 임금할증 등 임금 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근로자 과반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하면 신고 의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단위기간 2주를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려면 노조나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거치도록 한 현행 규제는 그대로 뒀다. 대신 3개월이 넘는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때는 사전에 정해야 하는 근로시간을 주간 단위로만 지정하면 되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현행법은 사전에 하루 단위로 근로시간을 미리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대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근로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다만 서면 합의 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이나 기계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생길 경우 근로자대표와 ‘협의’만 거치면 주간 단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때도 사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근로자에 통보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기업 규모에 따라 주 52시간 도입 시기가 다른데, 이와 연동해 개정된 탄력근로제를 도입한다는 뜻이다. 고용부는 전담기구를 설치해 향후 3년간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의 도입과 운영 실태를 분석해 문제점을 파악하기로 했다.

◇공 넘겨 받은 환노위… “일단 합의는 존중”

경사노위 합의안은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을 넘겨 받게 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일단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경사노위 브리핑에 참석해 “노사정이 마음을 합해 만든 합의안인 만큼 그 정신을 그대로 담아 잘 입법하겠다”고 말했다. 야당도 일단 존중한다는 뜻을 내놨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했던 자유한국당의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 간사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만약 서로가 깔끔하게 합의했다고 하면 합의 정신을 존중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만 환노위 위원장인 김학용 의원(한국당)은 입장문을 내고 “전격 합의라는 형식에 비해 내용 면에서 과연 노사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는 의문”이라며 “공이 국회로 넘어온 이상 경사노위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되 국회 고유 권한인 입법권은 확실하게 지키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입법 과정이 순탄할지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의당도 “재계의 입맛에만 맞춘 합의안으로 입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반면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공을 들여왔던 청와대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타협과 양보의 정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며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경사노위 탄력 받을 듯

이번 합의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경사노위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직접 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고 합의를 이룬다는 점에서 노동 현안을 푸는 정공법으로 평가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첨예한 노사 현안을 푼 전례는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 2009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날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렸던 대표적 사안인 탄력근로제에 대해 합의안이 나오면서 경사노위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됐다. 경사노위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다른 현안들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는 조만간 전체 합의에 앞서 공익위원안이 발표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논의 속도도 빠르다”며 “디지털전환과노동미래위원회에서도 노사정 입장을 공동 확인하는 선언문이 사실상 합의가 된 상태이고 국민연금 개혁특별위원회도 빠른 시일 안에 공익위원안을 발표하고 공론화를 거쳐 4월 하순에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합의는 숙제도 남겼다. 근로자대표가 취약한 노조 없는 사업장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오남용 폐해가 커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특히 현행 만성 과로사가 인정되는 기준은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로를 했을 때인데 이번 합의안에 따른 근로시간은 이보다 많다.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이외에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등 다른 유연근로제도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이 이날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총력 투쟁 방침을 밝히면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성택 기자 highoon@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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