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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한국문학은 더이상 제3세계 문학 아닌 세계문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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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한국문학은 더이상 제3세계 문학 아닌 세계문학이죠”

입력
2019.02.20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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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일본의 최대 서점체인인 기노쿠니야 도쿄 신주쿠 본점 해외문학 코너에 김지영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등이 진열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 일본의 최대 서점체인인 기노쿠니야 도쿄 신주쿠 본점 해외문학 코너에 김지영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등이 진열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의 그 책’을 나도 읽었다는 독자들의 후기가 쏟아진다. 지난해 12월 번역 출간된 이후 한달 만에 5만부, 현재까지 8만부가 팔렸다. 종종 품절되는 탓에 서점 별 책 재고 현황이 독자들 사이에 공유되기도 한다. 도쿄의 최고 번화가를 지나는 전철 JR 야마노테선 열차에서 그 책의 동영상 광고가 흘러나온다. 일본에 상륙한 ‘82년생 김지영’이 만든 현상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일으킨 바람은 한국 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됐다. K-팝, K-뷰티에 이어 ‘K-문학’ 붐으로까지 이어지는 조짐이다.

최근 10년 간 교보문고 소설 누적 판매량 1, 2위가 모두 일본 작가(히가시노 게이고와 무라카미 하루키)일 정도로 한국에서 일본 문학은 명실상부한 주류였다. 반면 일본의 한국 문학은 만년 마이너 장르였다. 그 기울어짐을 바꾸는 시도 한가운데에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59) 시인이 있다.

사이토 시인은 일본에 한국 문학을 열정적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이달 10일 발표된 일본번역대상 후보작 17편 가운데 4편이 한국 소설인데, 그 중 3편(조남주 ‘82년생 김지영’, 한강 ‘흰’, 정세랑 ‘피프티피플’)을 그가 번역했다. 박민규 작가의 단편집 ‘카스테라’로 2015년 제 1회 일본번역대상을 받았고, 한강 작가의 장편 ‘희랍어 시간’, 황정은 작가 장편 ‘아무도 아닌’, 천명관 작가 장편 ‘고래’ 등을 번역했다.

1991년 한국으로 와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사이토 시인은 2014년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작품을 일본에 번역 소개 해왔다. 봄날의 책ㆍYuriko Ochiai 제공
1991년 한국으로 와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사이토 시인은 2014년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작품을 일본에 번역 소개 해왔다. 봄날의 책ㆍYuriko Ochiai 제공

19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난 사이토 시인은 “해외 문학을 사랑하는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 문학의 흥미로운 붐이 일고 있는 게 확실하다”며 “그 배경에는 한국 문학의 ‘뜨거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문학을 처음 접해봤다는 독자들이 많이 하는 말은 ‘뜨겁다’는 겁니다.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열과 힘을 느꼈다’고 해요. 소설을 읽으면 매끈매끈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울었다는 일본 여성들이 너무나 많아요. 소설이 일본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준 거지요.”

사이토 시인은 “강한 도덕성과 윤리 지향성”을 한국 문학의 개성으로 꼽았다. “한국 소설에는 비평성과 서정성이 동거합니다. 일본 독자들은 그걸 신선하게 느껴요. 일본 작가 중에 한국 문학 애독자가 많은 것도 그 지점 때문이겠죠. 일본인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만 일본인처럼 체념하기보다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소설 속 한국인의 모습이 사랑 받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이토 시인은 최근 K-문학의 열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국내 언론의 표현 대로, ‘돌풍’일까. “돌풍이라기 보다는 ‘훈풍’에 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자극을 주는 향긋하고 상쾌한 바람이랄까요. 전철에서 제가 번역한 한국 소설을 읽는 독자를 만나면 그 바람을 체감합니다. 요즘엔 이른바 순문학뿐 아니라 장르 소설도 꽤 소개되고 있고요.”

지난달 30일 진보초 출판클럽에서 열린 최은영 작가 일본의 온유주(又柔) 작가의 북토크에는 2,000엔이라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80명이 넘는 독자들이 몰렸다. 문학동네 제공
지난달 30일 진보초 출판클럽에서 열린 최은영 작가 일본의 온유주(又柔) 작가의 북토크에는 2,000엔이라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80명이 넘는 독자들이 몰렸다. 문학동네 제공

조남주, 황정은, 정세랑, 최은영까지, 일본의 K-문학을 주도하는 건 젊은 여성 작가들이다. 일본의 한국 문학 인기가 페미니즘 열기를 업은 반짝 현상이라고 비관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에서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제3세계 문학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요즘 독자들은 한국 문학을 동시대의 세계 문학으로 읽습니다.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일본 내 관심이 커지는 데 따른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국 문학이 재미있으니까 시장이 생긴 거죠. 해외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유행과 거리를 두고 독서를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비관하지 않아요. 앞으로 다양한 소설을 소개할 거예요. 한국 문학의 존재감을 알려야지요.”

사이토 시인은 “K-문학 붐이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고 현재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면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문학 작품을 지탱하는 것은 역사입니다. 번역된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위화감 뒤에는 역사의 퇴적이 있어요. 한국처럼 짧은 기간에 큰 사회변화를 겪은 나라의 문학은 더욱 그렇죠. 일본 출판사 큐온이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매년 3권씩 내고 있고,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비롯한 전후 문학 시리즈 번역 작업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해요. 좋은 접근입니다. 젊은 작가의 문학을 접해 한국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고전에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거예요.”

사이토 시인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 분들이 이웃 나라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제가 그간 번역한 소설 대부분을 저보다 젊은 작가가 썼어요. 유일한 예외는 조세희 선생님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입니다. 제가 1982년 처음 완독한 소설이기도 하고요. 조 선생님이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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