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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당, 反민주의 길 걸을텐가

입력
2019.02.1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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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를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보고 파시즘적 전체주의를 ‘그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열린 사회의 적인 닫힌 사회란 국가가 시민사회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사회다.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과 배제가 일상화되고, 자유와 인권이 짓밟힌 군사독재 시대는 국가 안보와 경제를 빙자한 폭력과 야만의 닫힌 사회였다. 한국의 민주화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는 여정이었고, 이를 연 것은 국민의 민주화 투쟁과 전두환 내란에 항거한 5ㆍ18 민주화운동이다.

정치부재는 분단과 냉전을 이용해 수구적 기득권을 챙기고 혐오의 대상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며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적대 정치에 기인한다. 태생적인 정통성의 한계를 안고 출발한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이 밟았던 전철(前轍)이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진영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색깔론을 동원해 비판 세력에 재갈을 물렸던 민주주의의 ‘적’들은 그렇게 정권과 기득권을 유지하며 보수를 가장한 수구 세력의 명맥을 이어왔다.

5ㆍ18 민주화운동을 짓밟은 전두환ㆍ노태우의 내란죄, 내란목적 살인죄에 대해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미국 국무부 비밀문건에 의하면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처음 꺼낸 건 지만원씨가 아니라 전두환 씨다. 1980년 6월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의 만찬 자리였다. “광주에서 신원 미상 시신 22구가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 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 차례 정부 조사와 공식 발표,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공 식문서, 법원 판결에도 불구, 5ㆍ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지만원씨 등의 주장의 뿌리인 셈이다. 5ㆍ18을 정쟁 수단으로 호출하는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반헌법적 행태는 역사적 단죄를 소홀히 하고 민간인 사살과 발포 등의 진상을 아직도 규명하지 못한 정치권 책임이 크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정치 참여,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시민의 상식적 이해와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완전하진 않으나 최소 정의적 접근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한국 민주주의는 사회적 평등과 공존의 실종 등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위기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강경 수구와 일부 군사독재의 후예들이 끊임없이 호명하는 군사독재 정권의 색깔론 망령에서 비롯된다.

타협의 부재와 대립, 5ㆍ18 망언과 같은 극단을 동원해 수구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퇴행적 정치 등에서 사회경제적 정의와 상식의 퇴출은 당연한 귀결이다. 진실과는 동떨어진 이슈가 정치권을 지배하고 이념적 대결은 모든 것을 가리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갈등의 증폭과 혐오의 설정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반역사적 세력의 존재가 있는 한 5ㆍ18 망언과 동류의 행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권 쟁취를 위한 5ㆍ18 망언의 당사자인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 의원의 징계가 유예됐지만 전대 이후 이들의 징계 수위와 국회 제명 절차가 어떠한 결말을 맺을지 알 수 없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더불어민주당의 표만으로는 망언 당사자인 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제명이 통과될 수 없다. 한국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자비한 시민 학살과 폭거를 정당화하려 하고, 시민항쟁을 폭동과 괴물 집단으로 폄훼한 발언은 그 자체로 반헌법적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 특수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 주장은 이미 대법원과 정부 공식 입장에서 여러 차례 허위로 판단된 사안이다. 5ㆍ18을 조롱하고, 사실을 날조ㆍ왜곡하며 역사의 반동을 일삼는 민주주의의 ‘적’들에 대한 정치적 퇴출이 배척된다면 한국당은 그 날로 문을 닫아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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