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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치원 폐원 사태, 학부모는 무슨 죄인가

입력
2019.02.1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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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전국의 여론을 들끓게 한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처음 이 보도를 접하고 비리유치원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의 엄마로서, 혹여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이 명단에 있으면 어쩌지?’ 하며 마음을 졸이고 찾아보면서 내 아이의 유치원 이름이 명단에 없음에 안도했다.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서로를 위안하며 이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1달도 안되어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이 갑자기 폐원을 한다는 통보를 받게 되면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씨랜드 화재참사, 그리고 세월호까지... 사회 안전망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마다 늘 가슴만 아파했지 이런 일들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고, 내가 참여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생각에 방관자처럼 지냈다.

비록 비리유치원 사태는 앞서의 참사와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립유치원의 회계부정으로 유아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교육비와 급식비가 비리유치원 원장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빼돌려진 것이다. 이로 인해 유아들은 허술한 교육과 부실한 급식으로 시간과 끼니를 때웠고, 대한민국의 유아들에게 잘 먹이고 교육 잘 시키라고 유아교육과 이해상관 없는 전 국민들이 낸 세금을 비리유치원이 개인적으로 횡령한 것이다.

이러한 회계부정 사태를 막기 위한 사립유치원의 ‘에듀파인 시스템 도입’과 ‘유치원3법’의 입법은 너무도 당연히, 그리고 시급히 시행돼야 할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이러한 올바른 시스템의 정착을 거부하며 방해하고 있다.

심지어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예고도 없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아이의 유치원 원장은 가정사를 이유로 반별 학부모 소집을 통해 일방적으로 폐원을 통고하고 폐원동의서를 돌렸다.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원장은 ‘자신을 믿고’ 잠시 있으라 했는데 학부모들이 폐원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험하게 굴었다며 학부모들을 오히려 가해자로 몰며 폐원의 뜻을 확고히 했다. 학부모들은 한 달여를 일상이 망가진 채로 살았다. 따지거나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결국 유치원의 폐원은 막지 못했지만, 정부와 도교육청은 국공립 증설과 셔틀 배치 등으로 상처받은 폐원 유치원 학부모들의 갈 곳을 열어 주었다.

일부 유치원들은 일방적인 폐원을 고집하며 학부모들을 궁지로 몰아냈고 교육청의 감사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이들에게 당국이 강제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법적 제재를 회피하며, 국민의 비난과 원성이 가라앉고 잊혀질 때까지 버티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자율적인 감사와 단순회계 부정으로 인정하고 환수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고 끝내면 절대 안 된다. 만약 한유총의 바람대로 유치원 비리사태가 유야무야 종결된다면 이들은 또 다시 불법폐원과 무단 휴원으로 학부모들을 협박하고, 유치원 원장들은 교육비리와 횡령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일삼을 것이며 학부모들은 그들 이익집단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놀아날 것이다. 따라서 이 사태를 계기로 사립유치원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한 불법폐원과 무단 휴원을 무기로 삼지 못하도록 공립유치원을 확충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만 한다. 또한 회계부정과 비리를 일으킨 유치원은 고발 조치하고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강화해서 다시는 이러한 비리사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부정을 예방해야만 한다.

교육과 안전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유아교육의 공공성도 시스템으로 제도화하여 더욱 공고하게 강화해야 한다. 국가시스템의 붕괴는 사회질서의 혼란과 사회 안전망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 권리를 보장하라고 국가에 요구할 때, 국가는 이에 상응한 조처를 제시하고 신속히 대처해야만 한다. 그래야 국민도 국가를 신뢰하고 세금 내는 보람이 생긴다.

폐원 예정 유치원 학부모 한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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