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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가 ‘사바하’ 감독에게 연기를 시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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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가 ‘사바하’ 감독에게 연기를 시킨 이유

입력
2019.02.16 20:05
수정
2019.02.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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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영화 ‘사하바’에서 박 목사 캐릭터는 화자이자 관찰자”라며 “감정적 기복을 겪는 다른 캐릭터들을 잘 뒷받침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정재는 “영화 ‘사하바’에서 박 목사 캐릭터는 화자이자 관찰자”라며 “감정적 기복을 겪는 다른 캐릭터들을 잘 뒷받침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검은 사제들’(2015) 감독의 신작이라니 너무 반가웠죠. 소재도 신선하고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화 ‘사바하’(20일 개봉)가 배우 이정재(46)에겐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었던 듯하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표정에 가벼운 흥분이 실려 있었다. 26년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될 거라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처음 도전하는 공포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섹시한 도둑(‘도둑들’)과 범죄조직에 잠입한 경찰(‘신세계’) 권력을 탐하는 수양대군(‘관상’), 독립군을 가장한 친일파(‘암살’),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신과 함께’ 시리즈) 등 모두가 부러워하는 캐릭터와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가졌지만, 그럴수록 그는 ‘일상성’을 갈망했다고 한다.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한동안 강렬한 캐릭터만 연기하다 보니 일상적인 연기에 갈증이 컸다”며 “‘사바하’는 대단히 강렬한 이야기이지만 캐릭터는 일상성과 현실성에 기반하고 있어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바하’에서 그는 사이비 종교의 비리를 쫓는 박 목사를 연기한다. 박 목사는 불교에 뿌리를 둔 사슴동산이라는 신흥 종교 집단을 조사하다 사슴동산이 연루된 살인사건과 마주친다. 살인 용의자의 배후에 수상한 청년 나한(박정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나한의 정체와 사슴동산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시작하고, 종교적 광기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충격적 진실에 맞닥뜨린다.

초월적인 존재보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더 무서운 광기로 다가온다.
초월적인 존재보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더 무서운 광기로 다가온다.

가톨릭 구마 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처럼 이 영화에도 오컬트 요소가 있지만 이정재는 “종교를 이용한 악행을 추적하고 고발하는 범죄 수사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불교, 기독교, 무속신앙 등이 나오지만 저는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미스터리를 종교적 색채로 풀어냈을 뿐이죠. 박 목사가 사건의 단서를 조합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스릴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박 목사는 성스러운 종교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신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속물로도 보인다. “신은 어디에 계시냐”는 읊조림에는 반항심과 분노도 담겨 있다. 이정재는 “장재현 감독이 요구하는 독특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말투, 템포, 호흡 등 모든 연기 요소들이 그동안 제가 해 온 방식과는 달랐어요. 감독의 설명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감독에게 시연해 달라 부탁하고, 그 모습을 휴대폰 영상으로 찍었어요. 시나리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부요. 영상을 보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영화에 바친 베테랑 배우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캐릭터를 연구하고 시나리오를 쓴 감독이 원하는 박 목사를 잘 표현하는 게 나에게도 유리하다”며 “내 것만 고집하면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평소에도 감독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연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다른 배우들에게도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박정민과 이다윗의 출연작도 다 봤다고 한다. 기특한 후배가 아니라 흠모하는 동료로 두 사람을 대했다. 이렇게 열려 있는 배우는 정말로 흔치 않다.

‘잘생김’은 ‘이정재’와 동의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잘생김’은 ‘이정재’와 동의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정재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도전적인 작품들을 기다려 왔다.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찾기 위해 캐릭터를 고를 땐 직업에 신경 쓴다. 직업에 따라 외모와 말투 등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염라대왕까지 갔다”고 그가 농담처럼 말하는, 일련의 강렬한 캐릭터들은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스크린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영화로 두 시간 안에 다 담지 못하는 이야기도 많다”며 “기회가 닿는다면 드라마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바하’에서도 이정재는 박 목사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박 목사가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가족을 잃은 신학대 친구에 대해 들려주는 장면이 있어요. 사실은 그게 자기 이야기예요. 박 목사라 왜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됐는지 알 수 있죠.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의 과거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바하’가 꼭 잘돼야 합니다. 그래야 속편에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하하.”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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