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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출발부터 잘못된 불법유해사이트 차단

입력
2019.02.17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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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인터넷의 불법 유해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들고나와 인터넷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SNI(server name indication)필드 차단이라는 방법이다. 불법 유해 사이트를 막는 게 왜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방법 자체가 사람들이 알면 개인정보 침해 등을 우려할 만한 내용이며 효과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SNI 차단의 원리는 간단하다. 인터넷 접속 소프트웨어(브라우저)에 원하는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면 맨 앞에 ‘http’ 또는 ‘https’ 라는 표시와 함께 주소가 나타난다. http는 보안 조치가 미흡해 누가 어디에 접속하는지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보안을 강화해 누가 어디에 접속하는 지 볼 수 없도록 한 방식이 https이다. 즉 http가 전화번호, 주소 등을 겉면에 고스란히 드러낸 우편물 봉투라면, https는 이를 배달하는 사람만 볼 수 있게 암호화해서 가린 봉투다.

그런데 https에도 허점이 있다. 접속 주소로 전달하기 전에 SNI라는 곳에서 주소명이 살짝 드러난다. SNI 차단은 바로 이 허점을 이용했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이 SNI 영역에서 주소명이 잠깐 드러날 때 정부의 불법 유해 사이트 목록과 대조해 차단하는 것이다.

정부가 보안 허점을 이용한 차단 방식까지 들고 나온 이유는 네티즌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차단 목록을 우회해 기존 차단 방식으로는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SNI 차단은 출발부터 잘못됐다.

정상방법이 아닌 SNI의 보안 허점, 일종의 개구멍을 이용한 방식이어서 이를 막아버리면 적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터넷 업계에서는 이 허점이 잘 알려져 있으며 일부 인터넷 업체에서는 벌써 개선 조치를 취했다. 즉 해당 업체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SNI 차단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발빠른 네티즌들은 이 방법을 공유해 정부의 SNI 차단을 무력화하고 있다.

근본부터 잘못된 차단 방법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과도한 개인 정보 악용우려만 낳고 있다. 정부가 직접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차단하지만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다. 이를 기우라고 볼 수만도 없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 인터넷 투명성 보고서’를 보면 법적 절차에 따라 한 해 10만건이 넘는 인터넷 주소와 45만건 이상의 인터넷 게시물, 100만명 이상의 인터넷 이용 정보가 정부에 제공됐다.

일각에서는 SNI 차단을 통해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 음란물 유통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단 목록 895개 사이트 증 음란물은 96개로 약 10%에 불과하다.불법 음란물 차단이 제대로 될 지 의아스러운 상황에서 괜히 사람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꼴이다.

아울러 정부의 강제차단은 이용자들의 자기 결정권과 헌법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행위다. 정부에서 국민들이 볼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임의 규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들을 훈육 대상으로만 본다는 소리다. 그렇다 보니 한국은 프리덤하우스에서 인터넷 자유가 제한되는 국가로 분류된다.

일부 유해 정보가 청소년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면 청소년들에게만 접근 제한 조치를 취하고 사이트 전체가 아닌 개별 콘텐츠를 가려서 차단해야 옳다. 사이트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지독한 행정 편의주의다. 포털들도 여기에 기대어 유해물 신고가 들어오면 게시물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차단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의 인터넷 강제 차단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법적 기준도 없이 추상적 용어에 기댄 애매모호한 유해물 심의와 소명 절차도 없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일방적 차단 조치 등은 바로 잡아야 한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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