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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ㆍ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미투도 평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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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ㆍ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미투도 평등하지 않았다

입력
2019.02.14 16:45
수정
2019.02.14 21:3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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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MeToo)’의 가해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안태근 전 검사장, 이윤택 연출가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성폭력이란 불법을 저지른 데 대한 ‘응당한’ 처벌이었다. 서지현 검사, 김지은씨 등 피해자들은 이들을 단죄한 법정에 감사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삶은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애 전부를 걸고 피해를 폭로한 대가다. 과연, 미투 운동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투의 정치학’은 미투 운동의 중간 점검이다. 한계를 묻고 과제를 모색한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 문제를 고민하는 ‘성 문화 연구모임 도란스’가 기획하고 여성주의 활동가 4명이 썼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권김현영 등 저자들은 미투 운동, 페미니즘을 둘러싼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누구에게나 술술 읽히는 책은 솔직히 아니지만, 공들여 읽고 나면 눈이 밝아진다.

미투는 과연 모두에게 동등한가. 정희진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국의 미투는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승패가 갈린다. 가해자가 특정 분야와 조직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역설적으로 미투의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미디어를 통해 폭로할 수 있는 기회도 모든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미투가 세상에 나오려면 △사회적 지위가 있는 피해자가 △자신보다 더 힘 센 권력자의 불법 행위를 △대중에게 폭로할 수 있는 환경까지,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성폭력은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서 일어난다. ‘일반인 A씨’가 가해자, ‘일반인 B씨’가 피해자다. 이 사회는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겐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2차 피해는 성폭력 그 자체보다 때로는 고통스럽다. 매 순간 ‘피해자다움’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꽃뱀’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라진다. 미투 운동이 고발하는 성폭력은 극히 일부일 뿐, 절대 다수의 성폭력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미투에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투는 피해자를 선별한다는 점에서도 이중적이다. 여성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다. 성폭력이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은 간신히 만들어졌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끼어들면 큰일 나는 남의 집안 문제’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폭력 피해는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정희진은 경고한다. “가부장제 질서의 축도(縮圖)인 여성에 대한 폭력 구조를 해부하지 않으면, 미투는 일시적 스캔들이거나 인간성을 의심케 하는 잔인하고 예외적인 뉴스로 치부될 것이다.”

책은 여성들에 대한 쓴 소리도 담겼다. 미투 운동이 격화하면서 여성들은 분열할 조짐을 보였다. 늘 약자 편에 서 왔다고 자부하는 이른바 386세대 진보 여성들은 미투 이슈를 마주하고 표변했다. 오히려 피해자를 몰아 붙였다. “왜 뒤늦게 이제 와서 피해자라고 하는가. 성인 여성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 이성의 화신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권김현영은 안희정 1심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386 여성들의 문제점을 쓰라리게 짚는다. “그들은 그 동안 남성들과 동등한 동지로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나 약자로서 여성을 주장하는 게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피해자 혐오, 약자 혐오의 정서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난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실상도 ‘약자들의 연대’에 회의를 품게 한다.

미투의정치학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지음

교양인 발행ㆍ196쪽ㆍ1만2000원

미투로 우리 사회는 분명 달라졌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그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남성 중심 구조의 사회가 낳은 정치적 문제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투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사법체계와 사회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 열쇠는 남성들이 새로운 성 역할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미투 이후, ‘애프터 미투(After Me Too)’의 최종 목표는 미투의 종식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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