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2차 베트남인 한국 인식조사 (상)

※ <한국일보>는 2017년 국내 일간지 최초로 동남아에 특파원을 파견했습니다. ‘짜오! 베트남’은 특파원이 베이스캠프인 베트남에 상주하며 취재한 생생한 이야기로, 격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베트남에 대한 궁금증을 댓글이나 정민승 특파원 이메일로 알려주시면 취재에 참고하겠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2월 15일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전 베트남-말레이시아전이 베트남 하노이 미딘 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한 시민이 태극기와 베트남기를 함께 들고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제 아무리 강해 보였던 박항서 매직도 50년 묵은 과거사의 앙금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의 선전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사회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지만,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과 같은 과거사 문제는 물론이고 베트남 결혼 여성 이민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냉대, 베트남 근로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거나 일부는 오히려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베트남 국민들이 박 감독의 ‘매직’에 열광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박항서’와 ‘과거사 혹은 상처’를 구분하고 있다는 뜻으로, ‘박항서 신드롬’에 편승한 베트남 내에서의 각종 활동과 관련 정책수립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40대 ‘한국과 동질감 느낀다‘ 71%로 급상승
[저작권 한국일보] 베트남 국민 인식조사. 송정근기자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는 지난해 베트남을 휩쓸었던 ‘박항서 열풍’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베트남 국민을 대상으로 ‘제2차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의 핵심 문항인 ‘박 감독 때문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질문에 73.8%가 ‘그렇다’는 취지로 응답했는데 이는 2017년 12월 1차 조사 당시 ‘한국 문화에 동질감을 느낀다’는 비율(61%)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건 베트남 사회를 주도하는 40대의 인식이 48%에서 71%로 급상승한 점인데, 그 만큼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설문조사 자문을 맡은 응우옌 티 탄 후엔(45) 하노이 베트남국립대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박 감독은 한국의 어느 기업, 어느 지도자가 하지 못한 일을 혼자서 1년 만에 해냈다”며 “한국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인식 수준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후엔 교수는 1, 2차 조사 사이 한국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로 △문재인 대통령 국빈 방문 △한국 기업 투자와 한국관광객 증가 △박 감독 열풍을 꼽았지만, 정치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낮은 관심도를 이유로 “박 감독 열풍이 한국 이미지를 높아지게 만든 유일한 변수”라고 말했다.

◇ ‘박항서는 박항서, 과거는 과거’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2월 15일 열렸던 스즈키컵 결승전에서 베트남 대표팀이 1대 0으로 말레이시아를 물리치고 우승하자, 하노이 미딘 경기장 인근 도로를 점령한 시민들이 박항서 감독의 초상화를 들고 열광하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은 1차 조사가 이뤄진 직후인 지난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9월 막 내린 아시안게임 축구 4강,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우승을 일구며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썼다. 특히 지난해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C) 대회 우승컵을 10년 만에 들어올리면서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리에서는 박 감독의 사진ㆍ초상화가 국부(國父)로 칭송되는 호찌민 전 주석, 1954년 프랑스와 벌인 항불(抗佛) 디엔비엔푸 전투와 항미(抗美) 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의 사진과 나란히 진열돼 판매됐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인 스포츠 지도자가 베트남에서 일으킨 ‘매직’을 통해 한국군 참전과 같은 현대사의 아픈 상처 극복을 점치기도 했으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사실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63명(26.3%)을 기록했다. 1차 조사 당시 300명(30.0%)에서 3.7%포인트 감소하긴 했지만 1년 사이 상승한 호감도에 비하면 그 폭이 크지 않은 셈이다. 특히 50대 이상 노년층(전체 응답자 150명)에서는 그 응답자가 31명에서 48명으로 오히려 55% 증가했다.

◇ 박항서 열풍 편승 경계해야

과거에 있었던 일이었더라도 자국민의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는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베트남인들의 정서가 한국에 대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음을 보인 셈이다. ‘박 감독은 박감독이고, 과거사는 과거사’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를 선택하는 설문 가운데 ‘결혼이주 여성에 대한 모욕과 폭력 문제’를 1차 조사에서는 610명이 꼽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711명이나 지적했다.

유태현 전 주베트남 대사는 설문조사의 다소 모순적인 결과를 2018년 3월 한ㆍ베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 유감 발언에 비춰 설명했다. 그는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쩐 다이 꽝 주석이 ‘한국 정부의 진심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과거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한 발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 사람들에게 그 과거는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 현재”라고 지적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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