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청와대가 강제징용 소송을 뒤집어야 한다고 요구하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외교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권과 결탁한 양승태 사법부는 한일 관계의 주무 부처인 외교부마저 패싱한 셈이다.

12일 공개된 양 전 대법원장 공소사실에 따르면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한모 변호사는 2015년 11월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찾아가 “외교부가 소극적이어서 걱정이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강제징용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절차가 진행 중인데, 외교부가 여론을 의식해 의견서 제출을 꺼린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은 “외교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만 되면 계획대로 전원합의체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대리인과 사법부 수장의 부적절한 만남은 그 후로도 수 차례 계속됐다. 김앤장이 대법원에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는 문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6년 10월에는 대법원장 집무실에 찾아온 변호사가 “외교부가 이번에는 잘하겠지요”라고 묻자 “잘 되겠지요”라며 일본 전범기업이 원하는 대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판결에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3년 3월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2012년 대법원판결 선고 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해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한일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도 모르겠다"는 취지를 밝히자, 김앤장은 이 때부터 강제징용사건 대응팀을 만들어 양승태 사법부 수뇌부를 본격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의 재판부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 박남천)가 낙점 받았다. 형사35부는 지난해 11월 법원이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연루자들의 기소를 앞두고 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판사들로 구성해 신설한 3곳 중 한 곳이다. 박 부장판사는 연수원 26기로, 2기인 양 전 대법원장보다 24기수 후배다. 법관에 임용된 1997년부터 현재까지 23년째 재판업무만 담당한 실무형 판사다. 3~4차례 준비기일을 거친 뒤 재판은 다음 달부터 본격 시작될 예정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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