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도’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jtbc 제공

서울대 중앙도서관 난방이 꺼졌다. 그리고 희망도 꺼졌다. 세상이 더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가느다란 희망.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파업 중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용역이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줄이라는 정부 지침 덕분에 지난해 서울대 법인 소속 정규직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2류 인간이다. 행정사무직 노동자는 챙겨 받는 성과급, 명절 휴가비, 복지 포인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용역일 때보다 임금이 줄었다.

몸 쓰는 노동이 머리 쓰는 노동보다 덜 존중 받는 걸 그들은 절절하게 안다. 그래서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하는 대신 ‘덜 차별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학은 매정했다. 11번의 교섭, 2번의 조정에서 노사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서울대 기계전기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7일 대학 건물 기계실 4곳을 점거하고 파업을 시작한 사연이다. 도서관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노동을 중단했으니, 난방이 꺼진 건 당연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야근 중 발생하는 서초구 살인 사건은 신문 사회면 톱, 도봉구 살인 사건은 단신이다.” 수습 기자 시절 선배가 말했다. “왜요?”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어리석어서 나는 물었다. “그냥 외워.” 외우기도 전에 나는 알아버렸다. 언론이, 또 세상이 계급의 사다리 저 위쪽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을. 이번에도 그랬다.

사람들 눈엔 서울대생부터 보였다. 어느 신문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패딩 입고 공부한다고 안타까워하는 기사를 커다랗게 썼다. 학생들이 고시와 취업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애처로워 했다. 평소 25도쯤이었던 실내 온도가 16, 17도로, 다시 13도로 떨어졌다고 중계했다. 그 25도가 노동자 차별을 갈아 넣은 온도였다는 건 외면했다. 노동자가 학생을 인질 삼았다고 비난했다. 파업이란 ‘누군가의 안락함을 볼모 잡고 협상력을 높이는 노동자의 단체 행동’이며, 헌법이 파업권을 보장한다. 그 지당한 사실이 학생들 공부 걱정에 묻혔다. 지방 국립대학 난방이 꺼졌대도 그렇게 야단이었을까.

서울대의 반응은 처참했다. “병원 파업에서 응급실을 폐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금기이듯이, 대학 파업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이끌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금기가 아닐까. 인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사회학과 교수인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의 11일 언론 기고다. 그의 세계에서 서울대생의 공부는 누군가의 목숨과 등가다. 서울대 도서관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건 보국의 행위다. 저임금 노동자는 타는 목마름을 참아 가며 소중한 인재의 발 시림을 막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공부는 원래 그런 거다. “나 공부해.” 한마디에 모두가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학습한다. 부모의 노후, 가족의 여가, 하다못해 거실 TV 볼륨까지. 타인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보다 내가 쾌적하게 공부할 권리가 중요하다. 서울대생의 공부를 방해하는 게 국가 주요시설 침탈 급의 중죄로 불리는, 여기는 거대한 스카이 캐슬, 아니 스카이 지옥이다.

스스로 “민중해방의 불꽃”이라 부르는 서울대 총학생회의 초기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8일 발표한 첫 번째 입장문에서 “파업은 존중하지만, 파업 대상 시설에서 중앙도서관은 제외해 달라고 노조에 요청했으며, 다시 요청하겠다”고 했다. 인재들을 특별 대우 해 달라는, 그래서 노동자들이 협상력을 희생해 달라는 억지였다. “가정부가 보일러실 점거하고 집주인 행세 하려는 꼴.” 서울대에 붙은 대자보에 아마도 학생일 누군가가 그렇게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생들이 정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20년 전의 나처럼 어리석어서라고 믿고 싶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거울이다.

서울대 총학은 11일 다시 입장문을 냈다. 다행히, 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다고 했다. 대학은 노조 요구를 긍정 검토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도서관 난방부터 켰다. 희망도 다시 켜질 징조라고, 과연 희망할 수 있을까.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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