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리그 권예은 해설위원 인터뷰 
 프로ㆍ아마 여성 축구인을 위한 교류단체 ‘우먼 그라운드’ 창설 
지난달 31일 만난 WK리그 해설위원이자 우먼 그라운드 대표 권예은. 배우한 기자

해설위원부터 축구단 감독, 방과후 교실 선생님에서 ‘우먼 그라운드(한국여자축구문화진흥협회)’ 대표까지. 아직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은 전 여자실업축구 선수 권예은(29)씨에게 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한 때는 전도유망한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부상 이후 생각보다 빠른 은퇴의 기로에 섰던 권씨는 누구도 걷지 않았던 여자축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연초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권씨는 “당장 축구선수를 그만두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동료들에게 수많은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권예은씨는 “많은 사람들이 부상 때문에 2017년 은퇴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부상은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었어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축구를 재밌게 하고 싶어서였어요”라고 본심을 털어놨다.

권씨는 유소년 시절 연령별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촉망 받던 여자축구 선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빠를 따라 다니다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매일 같이 훈련을 하면서 열심히 꿈을 키우던 가운데 처음으로 16세 연령별 국가대표에 선발됐어요. 그런데 설레고 기쁘기만 하던 U-17 월드컵 소집 전 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허무해서 하루 종일 혼자서 울었던 것이 생각나요.”

고등학교 시절 부상 이후에도 선수생활 내내 부상 악몽이 권씨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부상보다 그를 괴롭혔던 건 더 이상 축구가 즐겁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강압적인 훈련 방식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경기에 출전하려면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그 방식을 따라가야 해요. 또 경기장은 순위를 향한 전쟁터니까 상대 선수들의 무자비한 태클을 받아내야 해요. 성과를 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제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권씨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은퇴를 결심한 순간부터 다시 축구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은퇴를 앞둔 2016년 WK리그 마지막 시즌은 그에게 선수를 그만두고 어떤 길을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영어 공부부터 생활스포츠 지도자 자격증, 스포츠심리상담사 자격증 취득까지 다양한 분야로 관심사를 넓혔다.

“은퇴한 여자 선수들의 진로는 제한적이에요. 계속 축구를 한다 해도 지도자나 심판, 의무트레이너 정도의 한정된 선택지밖에 남지 않아요. 뛰어난 여성 지도자가 많지만 남성을 우대하는 현실에서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아요.”

권예은이 우먼 그라운드 아카데미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상대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권예은씨 제공

권씨는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2017년 친구들과 ‘우먼 그라운드’를 만들었다. 우먼 그라운드는 말 그대로 축구하는 ‘모든’ 여자들을 위한 단체다. 대표 프로그램인 ‘프록사마(PROXAMA)’는 프로(PRO)와 아마추어(AMA) 선수들이 만나(X) 함께 축구를 즐기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 있다.

“여자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류라고 생각해요. 프로선수들은 많은 합숙으로 바깥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아요. 선수들에게는 축구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학생과 아마추어에게는 전문선수에게 지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죠. 이 프로그램으로 축구 선수 전문 필라테스 강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호주로 공부하러 간 친구도 있어요.”

권예은이 여자실업축구 WK리그 경기에서 해설하고 있는 모습. 권예은 제공

지난 2017년부터는 WK리그 해설도 맡았다. 아직도 시합 전날 긴장돼 잠을 못 잔다는 권씨는 해설위원으로서의 자신은 몇 점이냐는 질문에 “70점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딱 69점”이라고 답했다. “아직 다른 해설위원 분들처럼 전문적인 해설은 어렵지만 며칠 전까지도 함께 뛰었던 선배, 친구, 동생들한테 직접 이야기를 듣고 현장감 있는 해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올해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에서 해설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과천시여성축구단 감독과 방과후 교실 선생님까지 맡아 생활체육 지도자로도 맹활약하고 있는 권씨의 포부는 크다. 축구하는 여자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것. 단순히 숫자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서울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여자축구부가 있는 학교는 1개씩 밖에 없어요. 우먼 그라운드에서 만난 대학교 축구 동아리 친구들부터 평범한 회사원들까지 대부분 ‘어려서부터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몰랐다’고 해요. 프로든, 아마든 축구하고 싶은 여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하고 싶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거에요.”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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