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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못 늘려 실패?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시도 자체가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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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못 늘려 실패?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시도 자체가 진전”

입력
2019.02.12 04:40
수정
2019.02.12 08:3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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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시행 종료, 엇갈린 평가… “취업 의지 높아지지 않아” “행복도 개선이 중요” 팽팽 

[저작권 한국일보]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예비보고서.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예비보고서. 신동준 기자

‘세계 최초의 전국 단위 기본소득 실험’으로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핀란드의 ‘기본소득 정책’이 2년 간의 시행기간을 마치고 작년 말 종료됐다. 지난 8일 발표된 핀란드 정부의 첫 공식 평가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 기대와 달리 기본소득 지급의 고용 증대 효과가 미미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수혜자들의 행복도, 건강 등이 다른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점이다.

평가는 둘로 갈렸다. 회의론자들은 고용 효과가 없었다며 ‘실패’로 단정짓는 반면, 지지자들은 “행복도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핀란드 연구진은 “이번 기본소득 실험은 성공과 실패로 결론짓고 말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이번 실험이 ‘자동화와 고용유연화로 갈수록 급변하는 노동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낡은 사회보장 체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자 시도였으며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높은 복지수준 허점 메우기 

11일 핀란드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핀란드 사회보건부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2년간 장기 실업자 2,000명에게 월 560유로(약 71만원)의 ‘부분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지난주 공개된 핀란드 사회보험청(KELA) 연구진의 첫 예비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지급된 이들의 2017년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49.64일로, 기본소득이 지급되지 않은 17만여명(49.25일)보다 미미하게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기본소득 지급으로 고용이 개선될 걸 기대한 중도우파 성향 유하 스필래 현 핀란드 내각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결과다.

하지만 애초 이런 기대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상식과 어긋난다. 비판자들은 흔히 기본소득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 취업의욕을 떨어뜨릴 거라 우려하는데,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며 도리어 취업이 늘어나길 기대했다.

이는 핀란드의 강력한 복지체계 때문이다. 핀란드는 이미 실업보험과 주거수당 등 광범위한 ‘공적 부조’를 제공하고 있다. 실업자가 취업하면 오히려 수입(부조)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때문에 실업보험을 대체하는 차원에서 아예 조건 없이 일정 수준 기본소득을 취업 후에도 계속 지급하면 수혜자의 취업 의지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핀란드 정부와 연구진의 계산이었다.

이 계산이 빗나가면서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말도 있지만, 반대로 애초 실험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실험기간이 짧아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며 “기본소득 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거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던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새 복지정책 모색 의미도 

사실 핀란드가 이번 실험에서 기대한 것은 고용 개선효과만이 아니다. 현행 복지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들어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로 인해 고용환경이 상근제에서 단기계약 위주로 급변하는 가운데, 기존 실업보험을 대체할 새 복지 시스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부분기본소득을 시도해 본 것이다.

이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고용 측면의 결과보다 훨씬 고무적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참가자는 단기 취업과 실업을 오갈 때마다 이를 신고하고 증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관료주의의 장벽을 덜 느꼈다”고 응답했다. 또 단기 취업자들은 기본소득이라는 ‘보너스’로 인해 업무에 자신감을 느꼈으며, 상근직 취업에 대한 태도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온라인 경제전문매체 쿼츠는 “기본소득 수혜자가 취업 외에 창업, 교육 같은 다른 분야에서 효과를 봤는지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참가자 중에 가장 언론 노출이 많았던 인물은 언론인 출신 프리랜서 작가 투오마스 무라야다. 월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 실험 대상으로 선정된 그는 해외 70여개 매체와 인터뷰 하면서 “재정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삶의 질은 나아졌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는 “이전엔 수입이 너무 많으면 세금도 많아져 부업을 하기 힘들었지만 실험 기간에는 각종 강연과 토론회에 적극 참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통할까 

핀란드 연구진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실험을 설계한 올리 캉가스 투르쿠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실험 2년차의 고용 결과를 포함한 추가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핀란드 정부는 물론, 최근 세계 각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기본소득 지지층에겐 다소 아쉬운 결과다. 지금까지 있었던 기본소득 실험 가운데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단위로 실행된 유일한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의 ‘청년수당’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를 비롯한 해외 기본소득 실험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연구한 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핀란드 수준의 실업 부조가 우리에겐 없는 상황에서 실업 부조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려는 이번 실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지자체의 청년수당은 그 효과를 충분히 점검하지 않은 채 도입되고 있어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며 “핀란드처럼 정부와 의회가 충분히 토론하고 몇 년간의 정책실험을 거쳐 그 효과를 확인한 후 정책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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