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권주자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9일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구미=연합뉴스

정치권에서 ‘보이콧’(거부)은 최후의 카드다. 자유한국당이 야당이 된 이후, 국회의장이나 여당을 상대로 불만이 있을 때마다 남발해서 그렇지 가끔 정치 판도를 바꿔놓기도 하는 게 보이콧이다. 다만 쉽게 꺼낼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라 신중하게 둬야 하는 수다.

그런 노림수가 한국당 전당대회 레이스에 출현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제외한 한국당 당권주자들이 보이콧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당대회 날짜 때문이다. 애초 이달 27일로 예정했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같은 날 열리게 됐으니 미루자는 것이다.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롯한 후보 6명은 8일 보이콧 선언을 한 데 이어, 10일에도 “전대가 2주 이상 연기되지 않을 경우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후 통첩인 셈이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들이 친 ‘배수의 진’에도 11일 “일정 연기는 없다”고 재확인했다. 홍 전 대표 등으로선 보이콧을 철회할 명분이 줄었다. ‘반쪽 전대’ 위기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들은 정말 날짜 때문에 보이콧 카드를 쓰는 걸까.

 ◇속전속결은 ‘신인’ 황교안에 유리 

보이콧 전략을 내건 이들의 속내는 전대 날짜가 빠를수록 황 전 총리에게 판이 유리하게 돌아갈 게 뻔해서다. 황 전 총리는 전대 예정일을 불과 40여 일 앞둔 지난달 15일 한국당에 입당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에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지만 정치권에서 그는 아직 ‘신인’이다. 아직 흠집이 나지 않은 ‘새 정치인’은 여의도에선 큰 강점이다. 황 전 총리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입당 날짜를 정했을 것이다.

전대 날짜를 2주 이상 미룬다면, 황 전 총리의 최대 강점인 신선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신인의 약점은 언행 실수다. 황 전 총리가 관료를 지내긴 했지만, 거의 24시간 언론에 사실상 노출되는 생활은 해본 적이 없다.

이미 황 전 총리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가 기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께서 그 어려움(탄핵)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고자 했다”며 “실제로 (최순실씨 국정농단) 특검이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했을 때 수사가 다 끝났다고 봐서 불허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우려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가 아니어도 된다는 판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보이콧 대열에 홍 전 대표도 동참한 걸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홍 전 대표는 애초 황 전 총리 때문에 전대 출마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탄핵 총리’가 전대에 나와서 불가피하게 (나도) 출마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상황 판단이 빠른 홍 전 대표가 과연 전대 날짜 때문에 출마 결심을 접었을까. 그것보다는 실제 나서 보니 당 분위기가 예상보다 더욱 황 전 총리에게 기울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홍 대표 쪽은 당 선관위가 이미 황 전 총리에게 줄을 섰다고 보기도 한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1년 2개월 뒤 치러질 총선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선관위가 차기 당 대표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이미 페이스북에 “세간의 소문처럼 특정인의 아들 공천 때문에 무리에 무리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당내에선 홍 전 대표가 거론한 ‘특정인’이 선관위 고위 인사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당 선관위원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날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 했다면 양아치 수준”이라고 발끈했다.

홍 전 대표가 전대 출마를 포기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이미 유튜브 방송 ‘TV홍카콜라’라는 스피커가 있다. 이를 통해 새 대표를 견제, 비판하고 당의 변화를 촉구하는 편이 본인의 지지층 확보에는 훨씬 유리할 수도 있다.

 ◇반쪽 전대로 ‘흠집 내기’ 전략 
자유한국당 당권주자인 안상수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주호영ㆍ심재철ㆍ정우택 의원(왼쪽부터)이 10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회동 뒤, 전당대회 날짜가 연기되지 않을 경우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뜻을 같이 한다고 전했다. 뉴스1

판이 정말 황 전 총리에게 기울어져 있다면, 다른 당권주자들로선 보이콧을 관철해 ‘반쪽 전대’로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런 저런 사정과 상황으로 황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될 거라면, 힘이라도 확 빼버리자는 전략이자 앙심이다.

보이콧 선언을 한 당권주자들이 끝까지 배짱과 단결을 유지한다면, 당 대표 경선 후보는 황 전 총리와 김진태 의원 둘이 될 터다. 김 의원은 당선을 확신하고 출마했다기보다, 몸값을 높이려고 출사표를 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런 김 의원을 누르고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된 들 진정한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황 전 총리가 이렇게 대표가 된다고 해도 정치를 이제 시작한 상황에서 당내 사정이 복잡한 제1야당, 그것도 재건 요구를 받고 있는 한국당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돌발 변수들을 넘어 내년 4월 총선까지 치른다고 해도, 결과에 따라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 그때 거세게 당 혁신과 보수대통합, 야권 재편의 요구가 몰아 닥칠 경우 개혁 이미지를 아직까지는 유지하고 있는 오세훈 전 시장, 재기를 노리는 홍준표 전 대표에게 다시 기회가 올 가능성도 있다.

당권주자도, 지도부도, 선관위도 아닌 의원들의 한숨은 민심에 가 닿아있다. “전대 날짜를 고수해서 후보들의 집단 보이콧이 현실이 된다면, 흥행이 문제가 아니라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한 의원의 자조가 이를 대변한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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