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 무대에 거의 빠짐 없이 서는 이가 있다. 지방 공연까지 포함해 한 해에 70회에서 80회까지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30)이다. 2011년 발레단에 들어가자마자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 왕자로 파격 캐스팅된 주인공. 쉼없이 땀 흘린 끝에, 입단 8년째인 올 초 수석무용수 자리에까지 올랐다. 8일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여전히 연습 중인 김기완을 만났다.

‘수석’은 공식 직함일 뿐, 김기완은 그간 커다란 역할을 맡아왔다. ‘지젤’의 알브레히트,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스파르타쿠스’의 스파르타쿠스 등 국립발레단의 인기 레퍼토리와 신작에는 늘 그가 있었다. 발레단의 최고 무용수를 의미하는 수석무용수 타이틀은 그에게 “기쁨과 동시에 책임감을 주는 자리”다. 그는 “예전엔 겁 없이 딱 무대만 즐겼다면, 이제는 공연 후 관객 반응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며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할 순 없지만, 경험이 쌓이며 생기는 당연한 변화 같다”고 말했다.

20대의 김기완을 만났을 때, 그는 발레리노의 정점을 30대 초반으로 꼽았었다. 체력이 좋은 20대는 점프를 비롯한 테크닉이 신선하고 유려한 반면, 경험은 부족한 시기다. 30대 초반이 돼야 테크닉과 경험의 균형이 잘 맞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스스로 30대에 접어들었으니, 김기완도 전성기에 한 발을 들인 걸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전성기라고 하면 손흥민 선수처럼 골을 맨날 넣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방금 전 리허설에서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요. 아무리 봐도 전성기는 아니네요(웃음).” ‘수석’이라는 이름을 받아 들고도 그는 겸손했다. 관객은 그의 춤에 감동받지만, 스스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김기완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7)의 형이다. 형제가 재능을 타고났다는 말에 김기완은 두 번째 손사래를 쳤다. “감사한 말씀인 건 맞아요. 무용수의 재능이라고 하면 보통 테크닉을 떠올리는 분이 많죠. 그런데 테크닉은 재능보다는 ‘무조건 연습’이에요. 무대 위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끼’는 타고 나는 거겠지만요.”

지난해 국립발레단 신작 '마타 하리'에서 마슬로프를 맡았던 김기완. 국립발레단 제공

김기완이 발레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강원 춘천에 살 때였다. 기완, 기민 형제는 손을 잡고 발레 학원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나란히 ‘쫄바지’를 입고. 창피하다는 생각은 들 새도 없었다. 발레가 너무 재미있었다. 어린 김기완은 “조르고 졸라서” 부모님, 기민 등 가족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에 나섰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형제가 모두 발레를 전공하겠다는 것에 반대했던 아버지도 영화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영화 속 빌리는 영국 로열발레단에 입단한다. 김기완도 영국 발레 유학을 꿈꿨다. 아침마다 영국인처럼 토스트 먹는 연습까지 했다. 그 다부지고 뜨거운 꿈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며 현실이 됐다.

수많은 작품을 했지만, 김기완에겐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작품이 남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어서 더욱 하고 싶단다. 김기완은 “8분 정도 되는 2인무를 어느 안무가의 버전을 봐도 재미없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얼마 전 마린스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데뷔를 한 동생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나서 더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기민은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김기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파르타쿠스’를 꼽는다는 것이다. “저도 동생이 못해 본 작품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할 말이 생기니까, 동생이 ‘스파르타쿠스’를 못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웃음).”

평소 좋아하는 영화 '다시 보기'가 취미라는 김기완의 태블릿 PC에 저장 돼 있는 영화는 전부 멜로 영화다. '타이타닉' '노트북' '라라랜드'. 이한호 기자

김기완과 김기민의 형제애, 아니 동료애는 더없이 끈끈하다. 김기완이 두 번의 부상으로 무대에 설 수 없었을 때 든든하게 지탱해 준 것도, 수석무용수 승급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도 동생이었다. “형제이다 보니 서로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동생이 워낙 슈퍼스타니까 이목이 동생에게 쏠려 있을 때가 많았고요. 이렇게 저를 축하할 기회가 생기니까 동생이 정말 마음껏 축하해주더라고요.”

김기완의 인생은 온통 발레다. 올해 목표도 ‘다치지 말기’다. 그런 김기완에겐 이른바 ‘구름 같은 팬’이 있다. 그는 끝까지 겸손했다. “제 팬이라기보다는 국립발레단의 팬이죠. 저 혼자 춤을 추는 게 아니니까요. 발레 팬이 많아지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제 팬도 물론 많아지면 좋겠죠. 음, 지드래곤 만큼요(웃음)?”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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