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편집국에서] 김경수 재판, 사법신뢰의 문제다

입력
2019.02.10 17:21
30면
0 0
[1I9191]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정 구속된 김 지사가 구치소 호송버스로 걸어 가고 있다. 2019.0130./ 배우한기자 /2019-01-30(한국일보)
[1I9191]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정 구속된 김 지사가 구치소 호송버스로 걸어 가고 있다. 2019.0130./ 배우한기자 /2019-01-30(한국일보)

집권 여당에서는 여전히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의 ‘오염설’을 제기하고 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았던 성창호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를 지냈고, 사법농단 의혹 수사의 대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법적폐의 일원인 재판장이 사법농단 수사에 반발해 보복성 판결을 내렸다는 게 오염설의 골자다. 김 지사 또한 판결 직후 “재판장이 양 전 대법원장과 특수관계란 점에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항변하면서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빈손 논란을 불렀던 허익범 특검의 수사 결과를 감안하면 1심 결과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런 점에서 김 지사나 여권의 격한 반발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재판장의 이력을 문제 삼아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게 과연 온당한지 묻고 싶다. 애초 재판장에 대한 이력이 의심스러웠다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통해 ‘오염 판결’의 싹을 제거하는 게 옳은 전략 아니었을까. 성 부장판사가 참고인으로 검찰 수사를 받긴 했지만 혐의가 확정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저런 식으로 접근하면 “자신의 유ㆍ불리에 따라 정략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는 반격의 빌미만 제공하지 않겠는가. 조만간 있을 항소심 재판부 배당을 통해 사법농단과 무관한 법관이 재판장에 선임되고, 만에 하나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을 때도 불복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일부에서는 판결문에 등장하는 ‘~로 보인다’는 심증적 용어를 문제 삼아 1심 판결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있다. 특검 수사 때부터 직접증거가 부족하다는 논란이 컸던 만큼 당사자들의 진술이나 당시 정황이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당사자 진술의 일부 허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정황과 심증만으로 김 지사와 드루킹의 공모 관계를 미루어 판단했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하지만 직접증거가 부족한 형사재판에서 진술과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유ㆍ무죄의 방향을 결정할 때, ‘~로 보인다’ 또는 ‘추단(推斷)한다’는 겸양의 표현이 통상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문제 삼기 어렵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2심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도리어 1심 판결문에는 재판장의 흔들리지 않는 심증과 유죄 입증을 자신하는 논리가 차고 넘쳤다. 김 지사가 2016년 10월부터 1년4개월 동안 텔레그램 및 시그널로 드루킹과 주고 받은 파일 등 증거 목록만 20페이지에 달했다. 댓글 기계인 ‘킹크랩’의 시연을 본 적이 없다는 김 지사의 일관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런 방대한 정황 증거와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김 지사가 시연회에 참석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추론했다. 재판부는 특히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 면전에서 킹크랩을 시연하기 앞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쳤다는 사실까지 법정에서 밝혀냈다.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데 합리적 의심이 개입될 여지를 없애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강력했는데도 김 지사 측 변호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게 납득이 안될 정도다.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하기 앞서 재판 전략의 잘잘못을 따져봐야 한다는 여권 일각의 자성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김 지사와 여권의 불복은 무엇보다 사법불신을 부추긴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야권의 공세를 비롯해 재판 불복에 대한 후폭풍은 이미 시작됐다. 항소심 재판부 구성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설 연휴에 만난 야권 인사는 “항소심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서울고등법원 형사재판부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이런 상황에서 2심 무죄가 나온다면 누가 그 재판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사법농단 사태로 무너진 사법신뢰가 김경수 재판을 계기로 바닥을 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이다. 1심 결과를 차분히 복기하면서 2심과 최종심에 대비하는 게 패소한 측의 올바른 재판 전략이 아닐까 싶다.

김정곤 사회부장 jkkim@hankooj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