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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이중고… “차라리 덜 벌었다면 애 병원비 걱정 않고, 태권도도 보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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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이중고… “차라리 덜 벌었다면 애 병원비 걱정 않고, 태권도도 보냈을 텐데…”

입력
2019.02.09 09:00
수정
2019.02.09 12:2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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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취업 문턱ㆍ현실 모르는 제도… 정부 지원도 월수입 148만원 넘으면 끊겨 

취업 문턱에서는 차별 당하고, 일하면서는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동분서주하고, 급여가 오르면 각종 지원책으로부터 소외 당하는 싱글맘의 삼중고가 계속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업 문턱에서는 차별 당하고, 일하면서는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동분서주하고, 급여가 오르면 각종 지원책으로부터 소외 당하는 싱글맘의 삼중고가 계속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면접에서 남편 직업을 묻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솔직하게 (미혼모라고) 답하면 제 사연이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결국엔 탈락시키고요. 가족관계, 남편 직업을 물은 모든 면접에선 떨어졌던 것 같아요.” (A씨)

생계비는 절실한데, 버젓이 자행되는 차별로 인해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다.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해도 홀로 아이를 돌보며 동분서주하다 퇴직을 결심하기 일쑤다. 조금만 악착같이 벌어 월수입이 기준점을 넘기면 정부 지원 양육비 지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책임을 방기한 아이의 친부(혹은 친모), 즉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상당수 미혼모ㆍ부들이 놓인 처지는 이런 삼중고, 사중고의 늪이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아기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취업 문턱에서부터 좌절을 맛본 건 A씨뿐만이 아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미혼모 B씨는 “정규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늘 가장 불편하고 힘겨웠다”고 했다. 취업 면접에서 번번이 ‘책임감이 없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아야 했던 것. 그는 “이혼했다고 말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직장을 구하기 더 힘들었던 것 같다”라며 “미혼모라고 하면 성적으로 문란할 것 같고, 책임감 없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구직 과정을 돌아봤다.

“젊은 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미혼모로 사는 건, 책임감 없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인데 왜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지 답답했어요. 무조건 몸을 함부로 굴렸기 때문 아니냐는 거에요. 그런 시선으로 아이까지 바라보는 건 더 문제였죠.”

면접에 합격했다가 다시 취업이 취소되거나 며칠 일을 하다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생산직에 취업했던 C씨는 “취업 합격 뒤 등본을 떼오라고 해 가져가면 ‘어? 아이가 있네’, ‘애 아프면 봐줄 사람은 있냐’고 직접 말하는 회사가 많았다”라며 “돌봐줄 사람이 없는 건 맞다고 하면 ‘그럼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잔업과 특근을 할 수 없고, 아이가 어리니 곤란하다고 잘리기도 했어요. 어린이집에 맡기니 잔업은 가능하다고 했는데도 결국엔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미취학 아동을 양육 중인 10~40대 미혼모 3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1%가 현재 무직 상태라고 답했다. 12%의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37%만이 취업 상태였던 것. 이들 취업자 중에도 정규직에 재직 중이라고 답한 이들은 31.6%에 불과했다. 계약직 32%, 일용직 31.6%가 가장 많았다.

양육미혼모 경제적 특성. 그래픽=신동준 기자
양육미혼모 경제적 특성. 그래픽=신동준 기자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업. 그래픽=신동준 기자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업.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녀 양육의 어려운 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녀 양육의 어려운 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힘겹게 일을 구해도 고통은 돌봄 공백으로 이어졌다. 경력단절 끝에 기간제 교사로 일할 수 있었던 A씨는 “아이가 너무 아프다고 해도 믿고 맡길 곳이 없고, 급하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으니 쌀죽만 사주고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아이가 아파도 저에게 말 못 하고 그냥 양호실에 누워만 있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

계약직, 일용직으로나마 계속 일해 온 B씨는 “맞벌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가 7세가 되도록 여태 ‘아이돌봄’ 등 혜택을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 아이돌봄서비스의 긴 대기 줄을 기다리다 한 번도 필요할 때 서비스를 이용해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애써 노력해 수입이 월 148만원을 넘긴 경우 월 13만원, 5만원 수준의 정부 지원 양육비 지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노력하는 게 오히려 두렵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A씨는 “소득 없던 시기에는 오히려 방과 후 교육비, 병원비, 체육학원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힘겹게 일해 소득이 아주 낮은 기준점을 넘어가는 순간 오히려 이 모든 게 뚝 끊기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었다”라며 “148만원으로는 그 모든 걸 벌충할 수 없는 수준 아니냐”고 했다.

“차라리 노력조차 안 하고 더 가난한 채로 머물렀으면 병원비 걱정은 안 할 텐데, 태권도 학원이라도 마음껏 보냈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이렇게 조금만 벌이가 생기면 많은 지원을 일순간에 끊는 게 과연 자립을 권장하는 정책인지 의문이었죠. 도움이 필요하고 막막해 주민센터에 가 상담해봐도 공무원들이 저보다 관련 제도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이들도 많고요.”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취업 성공 패키지와 같은 각종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미혼모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전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데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다양한 직업군에 취업이 가능한 고학력자가 많다는 점이나 홀로 육아와 취업을 병행해야 하는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며 “특히 긴 대기시간으로 상당수 재가 양육미혼모들이 아이돌봄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돌봄 공백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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