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촉구 한국한부모연합 
한국한부모연합 전영순 대표. 김수진 인턴기자

“남편은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끔찍이도 싫었다. 한국 사회에서 배우자 없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한부모라는 이유만으로 타자화, 대상화되곤 했던 싱글맘들. 이들에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 중 한 명은 글을 써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하룻밤 만에 장문의 에세이를 완성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한부모 6인이 쓴 ‘부모를 넘어선 그녀들의 이야기’는 한국한부모연합(이하 한한연)에서 기획한 에세이집이다. 에세이를 온라인으로만 출판하기 아쉬워 (재)아름다운재단 2017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과 (사)시민+같이가치 모금 사업에 지원했다. “한부모인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당차게 낸 목소리에 사람들의 마음이 동했다. 430만원의 목표 금액 달성 후 한부모 6인은 1년 동안 글 쓰고 고치기를 거듭해 책자를 발간했다.

책 제목은 한한연 전영순 대표가 쓴 글귀에서 비롯됐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사무실에서 만난 전 대표는 “부모로 사는 건 20년 정도”라며 “자녀 독립 후 부모를 넘어선 본인의 인생을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진방 사무국장은 “한부모 에세이집 발간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였다”며 덧붙였다. “한부모들은 글을 쓰며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 선상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는 기회를 가졌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모두 그간 상처받았던 마음이 자연스레 치유되는 경험을 했죠.”

2004년 발족한 한한연은 한부모가족의 법적, 사회적 권익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전국 10개 지역단체에서 활동 중인 회원은 1,800여명에 달한다. 지역단체별 정기 모임에서는 한부모 관련 법ㆍ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이 중 주요 의견은 매달 한 번 서울 사무국에서 열리는 대표 회의를 통해 공유되고, 한한연 활동 내용에도 반영된다.

한한연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운동에 참여하는 등 한부모가족을 향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 있다. 여전히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한부모가족은 흔히 비(非)정상으로 간주된다. 한부모 당사자를 ‘문제 있는 사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으로 보는 편견은 특히 채용 과정에서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는 ‘제대로 돌봄 받지 않은 아이’라고 여겨지는 등 대물림되는 편견도 문제다. 전 대표는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사회의 포용과 결혼 제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혼인 지위에 따른 편견, 차별 없이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는 측면에서 제도와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이혼 및 사별 등에 의한 한부모가구는 153만3,000여가구다. 이 중 18세 이하 자녀를 둔 가구는 42만5,000곳이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 저소득 한부모가구는 18만1,023가구(전체 가구의 11.8%)뿐이다. 한한연은 “현재 일부 저소득 가구에 한정된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 지원 제도가 한부모의 자립 의지를 꺾는다는 비판도 있다. 수입이 조금 늘어나 일정 기준에서 벗어나면 바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에 “돈을 조금 더 버느니 지금 이대로 지원받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 대표는 “’더 열심히 살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라며 “자립해 소득이 늘어날 경우 지원 유예기간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 사무국장은 “복지만으로 한부모의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지원 대상자를 자녀가 만 18세 미만(취학 시 만 22세 미만)인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복지 테두리 안에 평생 머물 수 없는 한부모는 경제적 자립이 절실하다. 한한연은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열매나눔재단의 ‘메리맘’ 등 한부모여성 창업 지원 사업에 회원들이 도전하도록 돕고 있다. 사업에 선정돼 미용실, 네일아트숍, 마사지숍 등을 창업한 회원들은 한부모 모임에서 창업 정보를 나눈다. 이들의 창업 후기는 다른 회원에게 자립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한한연의 ‘한부모 서포터즈’ 역시 한부모들의 자립을 지원, 장려하기 위한 활동이다. 한한연은 선배 한부모들과 초기, 위기 한부모들을 각각 1대 1로 연결하고 있다. 현재 서포터즈 40쌍은 동료 간 상담을 통해 한부모로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공유하고 정보 제공 및 자원 연계 등 지지와 연대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부모를 넘어선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 대표는 한부모의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기 위해선 한부모 가정에 편견 없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아이 돌봄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으면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어요. 지금은 이런 점들이 잘 되고 있지 않아 한부모를 지칭하는 말과 제도가 따로 있는 거죠. 언젠가 ‘한부모’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김수진 인턴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