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스타ㆍ사회적 이슈 없이 15일 만에 관객 1000만 돌파
6일 서울 영등포구 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날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의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특급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다. 사회적 이슈를 품고 있지도 않다. 제작비는 65억원 가량. 100억원대 물량공세가 흔해진 충무로에선 중급 취급 받는 규모다. 관객 500만명 정도만 모아도 ‘대박’ 수식을 얻을 만한데, 개봉한지 15일만에 1,0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섰다. 게다가 흥행몰이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 1,500만 관객도 어렵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의 흥행몰이는 이변 중의 이변이다. 충무로 흥행 공식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는 평까지 나온다.

6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이 이날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한직업’은 5일 하루에만 113만222명이 관람한 데 이어 6일에도 110만명 가량을 모은 것으로 추산된다. 5일까지 극장 매출액은 813억9,737만원이다. ‘극한직업’은 해체 직전의 경찰 마약반이 잠복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장사가 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3무’ 흥행은 없었다

영화계에서 1,000만 영화는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속설이 있다. 아무리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해도, 막대한 제작비를 투여해도 관객의 마음을 사기 쉽지 않아서 나온 말이다. ‘극한직업’을 포함해 1,000만 클럽에 가입한 한국 영화는 18편이다. ‘왕의 남자’(2004)와 ‘7번방의 선물’ ‘변호인’(2013), ‘베테랑’(2015)을 제외하면 모두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왕의 남자’ 등 중급 영화 4편은 정치ㆍ사회적 이슈를 연료 삼아 1,000만 고지에 도달했다. ‘왕의 남자’는 개봉 당시 참여정부의 정치적 상황을 연상시킨다며 화제를 모았고, 반복 관람 유행을 선도하며 1,230만2,831명을 끌어들였다. ‘7번방의 선물’은 사형제 폐지 논란을 재점화하며 흥행세를 유지했고, ‘변호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베테랑’은 재벌 3세의 갑질을 응징하는 내용으로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변호인’과 ‘베테랑’은 당대 최고 배우로 꼽히는 송강호와 황정민을 각각 주연배우로 내세우기도 했다. 100억원대 제작비라는 든든한 후원은 없어도 대중의 관심을 살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반면 ‘극한직업’의 외형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출연배우 류승룡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등은 이른바 ‘특A급’은 아니다. 장대한 스펙터클과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관객을 유혹하지 않는다. ‘7번방의 선물’에 이어 코미디 영화로선 두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모았지만 신파가 가미된 ‘7번방의 선물’과 달리 웃음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막바지에 활극이 펼쳐지지만 도드라지지 않는다. 물량도, 이슈도, 특급 스타도 없는 ‘3무(無)’ 1,000만 영화인 셈이다.

영화 '극한직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충무로 블록버스터 부진과 대조

‘극한직업’의 흥행은 충무로 대작들의 흥행 부진과도 대조된다. 지난해 제작비 100억원대의 한국 영화는 15편 개봉했으나 ‘신과 함께: 인과 연’(‘신과 함께2’)과 ‘공작’ ‘독전’만 극장 수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공작’과 ‘독전’은 본전 수준의 흥행 수익을 남겨 대작다운 흥행성적은 ‘신과 함께2’ 정도 밖에 안 된다. ‘크게 벌려 크게 버는’ 대작의 속성과는 동떨어진 흥행 결과다.

스크린 독점 비판도 나오나 ‘극한직업’이 마땅한 경쟁자 없이 흥행 독주를 한 점도 시사점을 준다. 지난해 한국 영화는 명절 대목과 여름ㆍ겨울 성수기에 대작 영화 3,4편이 맞물려 개봉하며 출혈경쟁을 펼쳤다.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충무로가 제살 깎아먹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극한직업’의 상업적 성공은 지난해 하반기 극장가를 들썩이게 한 ‘보헤미안 랩소디’(922만4,591명) 돌풍과도 비교할 만하다. 톱스타 없는 할리우드 중급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은 전반적인 트렌드 변화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기존에 흥행의 주요 변수로 여겨졌던) 거대 담론과 사회 비리를 다룬 영화, 블록버스터나 역사물에 대중이 싫증을 내고 있다”며 “‘극한직업’의 흥행은 향후 몇 년 간 한국 영화의 트렌드를 전환시킬 계기로 작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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