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24시의 사진들은 이후 '디지털 동굴 벽화 사진'이란 부제를 단 사진집으로 발간됐다.

군사 용도의 인터넷이 대중화ㆍ상업화하기 시작한 건 불과 30년 전이다. 초창기 검색 서비스의 대명사 ‘야후(Yahoo)’가 1994년 창업했고, 인터넷 기반 사회의 가능성에 세계가 들뜨기 시작했다.

‘Day in the Life’란 이름의 인터넷 기반 사진 에세이로 주목을 끌던 사진가 겸 사이버마니아 릭 스몰런(Rick Smolan)이 그 무렵 자신의 기획을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인터넷 기술이 변모시킨 세계인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실시간으로 보여주자는 거였다. 그는 전 세계 포토저널리스트 1,000여명과 프로그래머 등과 함께 그 기획을 추진했고, 어도비시스템스 등 컴퓨터 회사와 코닥사 등 50여개 기업이 자금을 댔다. 1996년 2월 8일 만 하루 동안 웹사이트 ‘cyber24.com’을 통해 진행된 ’24 Hours in Cyberspace’였다.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의 부인 티퍼 고어(Tipper Gore)도 사진작가로 참여했다.

앨 고어는 ‘사상 최대 인터넷 협력 프로젝트’를 축하하며 꽤 긴 에세이를 발표했다. 환경론자인 그는 온ㆍ오프라인 세계는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공유하지만, 오프라인 세계가 하루 2만여에이커의 우림을 파괴하고 74종의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1,600만톤의 탄소와 70만톤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과 달리 사이버 세계는 누구도 해치지 않고 무엇도 훼손하지 않으며, 저 값진 환경 정보들을 종이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지금 시각에서 보자면 꽤나 천진난만한 내용이었다.

공교롭게 그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던 ‘통신품위유지법(CDA)’에 서명했다. 인터넷을 통한 청소년 폭력ㆍ음란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법으로, 발효 전부터 인터넷 기업과 시민자유연대(ACLU) 등의 반발을 사오던 법이었다. 직후 ‘유저랜드’의 설립자 데이브 와그너(Dave Wagner)가 저항 사이트 ’24 hours of Democracy Project’를 시작했다. 웹(Web) 안에 뉴스를 시간 순으로 통나무(log) 쌓듯 보여주는 형식의 그 폴더에서 블로그(blog)란 게 유래했다고 한다.

스몰런의 저 들뜬 시도와 클린턴 정부와 의회의 인터넷 규제는, 결과적으로 초기 인터넷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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