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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타우와쿨 카르만(2.7)

입력
2019.02.0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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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혁명의 선봉 타우와쿨 카르만
예멘 혁명의 선봉 타우와쿨 카르만

1839년 예멘이 남북으로 분단됐다. 인도 동방항로의 거점이 필요했던 영국이 오스만 터키 치하의 예멘을 침략, 인도 동방항로의 거점인 아덴(Aden)항 등 남쪽을 차지한 거였다. 1차대전으로 터키의 힘이 빠지면서 북예멘이 1918년 먼저 독립했고, 남예멘은 1963년 독립했다. 통일 논의는 일찌감치 시작됐지만, 시아-수니파 종교 갈등과, 친서방 북예멘과 친소 남예멘의 이념 갈등, 석유 등 자원에 기반한 토호들의 이권 등이 겹쳐 냉전기 내내 분쟁을 치렀다. 냉전이 끝난 1990년에야 협상을 통해 무혈 통일했지만, 그게 더 큰 시련의 시작이었다. 정부 구성을 둘러싼 갈등과 분리주의자들의 무력 분쟁이 이어졌다. 경제적 우위의 북예멘 주도 통일은 지역 갈등을 심화했고, 혼란을 핑계로 알리 살레 독재정권은 종신-세습 집권을 꾀했다.

‘아랍의 봄’과 함께 2011년 예멘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수도 사나 국립대생이 중심에 선 봉기는 긴 유혈사태 끝에 이듬해 2월 살레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권력 공백기의 새 정부를 장악하기 위한 분파간 대립은 오히려 격화했다. 하디 정부와 북부의 후티 반군, 남부 분리주의 과도위원회, 거기에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IL)가 개입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랍에미리트공화국 등이 가세했다. 미국 비정부 연구기관인 평화기금(FPP)의 취약국가지수(FSI)의 2018년 순위에 예멘은 남수단과 소말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위태로운 국가로 평가됐다.

타우와쿨 카르만(Tawakkol Karman, 1979.2.7~)은 2011~12년의 예멘 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2012)을 탄 아랍권 첫 여성 수상자다. 알자지라 기자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인 그는 2005년 ‘자유여성언론인(Women Journalists Without Chains)’을 조직, 언론 자유와 여성 인권,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다.

2017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아랍의 봄’이 좌절된 이유를 묻자 그는 질문이 틀렸다고 말했다. “혁명은 실패하지 않았고, 존엄과 자유를 위한 우리의 싸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혁명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6년이 지났고, 첫 싸움에서 우리는 예멘과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서 여러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승리를 거뒀다. 다만 아직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뿐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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