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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ㆍ담]“김정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선제적 조치로 트럼프 도와줘야”

입력
2019.02.01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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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오른쪽)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31일 박일근 논설위원과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문정인(오른쪽)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31일 박일근 논설위원과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북한이 핵 무력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의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대북 제재에서 남북경협을 예외적으로 면제해주는 조치가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비핵화의 전체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복심으로 통하는 문정인(68)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총론이었다면 2차 회담은 이를 구체화할 각론을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31일 문 특보를 만나 2월말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과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은 상징성이 컸던 반면 구체적 내용은 없었다.

“6ㆍ12 싱가포르 선언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향후 북미 관계의 기본 틀이 다 나와 있다.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1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2조)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3조)한다는 데 동의했다. 비핵화의 총론을 밝힌 셈이다. 이를 어떻게 각론화할 것인가가 2차 회담의 기본 의제가 될 것이다.”

-북미 간 실무협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미국은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을, 북한은 ‘점진적 동시 교환’을 주장하고 있어 간극이 큰 상태다. 이를 어떻게 줄일 지가 관전 포인트다. 미국은 ‘핵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의 순서대로 완전한 비핵화 이행을 원한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핵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이는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탄도미사일, 더 나아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지식 인프라까지 모두 없애는 것을 뜻한다. 반면 북한은 우선 정치적 보장을 원한다. 북미 수교까지 가길 기대한다. 두 번째로 군사적 보장,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란 것이다. 세 번째가 경제적 제재 완화다. 네 번째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수용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북미 간 매트릭스를 어느 선에서 양보할지 등이 실무회의에서 협의되고 있다.”

-누가 먼저 양보해야 하나.

“북한은 미국이 적대적 의도와 행동을 완화 또는 포기하는 것에 대한 징표가 제재 완화라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 제일 급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탄두 제거일 것이다. 여기에서 타결점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 마중물 효과를 위해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건 북한이 해줘야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사찰ㆍ검증할 수 있도록 해주고, 동창리 탄도미사일 실험장 폐기하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구체적 행동도 먼저 내놔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와 언론을 설득하고 제재 완화 조치도 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ICBM을 폐기하고 대북 제재 관련 남북경협을 풀어주는 식의 ‘스몰딜’에 대한 전망이 많다.

“스몰딜이든 빅딜이든 딜을 하기 위한 로드맵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로드맵에 대해 두 정상이 협의하고 한국까지 참여하는 로드맵 작성에 합의해야 한다. 로드맵에 따라 시간표도 나온다. 핵 폐기에 대한 전체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예측이 가능해 모든 국민과 유관 국가들이 안도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다.”

-북핵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이다. 2차 회담과 로드맵 작성에 우리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고 있나.

“우리는 이미 재작년 로드맵을 만들고 미국과 교환했다. 우리 쪽이 구상한 로드맵이 있다. 청와대에서 충분히 미국과 협의한 것으로 안다. 로드맵에는 북한의 핵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에너지와 경제 보상, 다자협의체 구성 부분 등도 들어가야 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주 간격으로 만나고 있고 워킹그룹도 있다. 북미간 협의할 때 한국이 들어갈 수 있게 제도적 장치가 돼 있다. 로드맵과 관련, 문 대통령이 지난해 유럽 순방 때 북핵이 불가역적 단계까지 가면 제재 완화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우리의 정책이고 미국에도 누차 얘기했다.”

-ICBM을 폐기하고 대북 제재를 완화해줄 경우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핵 위험은 그대로인데 보상만 해주는 꼴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결과는 우리 정부도 수용 못 하고 일본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거리 탄도 미사일은 일본, 스커드미사일은 우리를 위협한다. 사실 ICBM이라는 게 화성 15형 하나 시험 발사한 것 아닌가. 그것만으로 북한이 ICBM을 완전히 가졌다고 볼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큰 양보를 하겠나. 운반 수단만큼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핵탄두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31일 박일근 논설위원과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31일 박일근 논설위원과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은 실패했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최근 미 의회에서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보기관이 갖는 전형적 실수를 범하고 있다. 정태적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핵을 협상으로 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적극적이다. 최근 영변 핵시설 활동도 없다. 북한은 이미 핵을 동결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예측이다. 정보기관 분석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동태적 부분이 배제됐다.”

-북한이 핵ㆍ미사일 실험을 안 하는 것은 핵 무력을 완성한 만큼 더 이상 실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 아닌가.

“북한은 핵ㆍ미사일 실험을 협상 카드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협상 중이니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밉다 해도 이 정도까지 온 건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동결한 상태에서 협상하고 있고 조건만 맞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건 대표가 수십억 달러를 예치한 에스크로(escrow) 계좌 개설과 이를 통한 단계적 경제 보상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신한 아이디어이긴 한데 해법이 되긴 어렵다. 에스크로는 투자의 문제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제재 완화가 상당 부분 이뤄져야 나올 수 있다. 제재 완화도 안 된 상태에서 에스크로를 얘기하면 먹지도 못할 떡을 올려놓고 ‘말 잘 들으면 떡 줄게’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북한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제재 완화가 안 되면 남북 경협이라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 해도 다른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에 얼마든지 핵물질이 은닉돼 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헛똑똑이들 이야기다.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지난해 평양 선언에서 북한의 제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변은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로 불린다. 그것을 영구 폐기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숨길 순 있지만 그 문제는 먼저 신뢰를 쌓고 영변 핵시설부터 해결해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풀릴 수 있다고 본다. 우리와 미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찾아내고 이를 올려 놓고 얘기를 해야지 북한보고 먼저 다 공개하라고 하면 북한이 이를 듣겠나. 북한 핵무기 숫자도 전문가들마다 20개에서 100개까지 의견이 다르다. 미 정보 당국은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언론은 이를 사용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적게 신고하면 속임수를 쓴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 신뢰를 쌓은 뒤 협력적 사찰과 검증을 해야 한다. 사실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라도 북한 핵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핵무기도 디자인이 모두 달라 다른 나라 과학자가 폐기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신뢰를 쌓고 협력을 받아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핵폐기도 가능한 셈이다.”

-북한이 3대에 걸쳐 어렵게 완성한 핵 무력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많다.

“김일성 주석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조건만 맞으면 비핵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조건을 주지 않았다. 과거엔 차관보급에서 상향식으로 갔다. 이번엔 톱다운이다. 남북ㆍ북미ㆍ북중 정상 간 소통 채널이 있고 나름 신뢰도 있다. 문 대통령은 평화가 있어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핵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분명하다. 안보만 담보된다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을 해결한 위대한 외교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비핵화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북한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한 국제적 여건이 좋다.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시 막판에 문 대통령도 참여할 수 있나.

“모양이 아주 좋다. 바라는 바이다.”

-바라는 건가, 준비되고 있는 건가.

“말할 수 없다. 바라면 준비하는 게 아니겠나.”

인터뷰=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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