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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 멈추자 되레 곤혹스러워진 미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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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 멈추자 되레 곤혹스러워진 미ㆍ일

입력
2019.01.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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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대국화 제동 걸린 日, 방위비 인상 명분 잃은 美 

 동북아 전통적 협력국 한국과 전례 없는 ‘안보 갈등’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에서 국회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에서 국회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이 전통적 안보 협력국인 한국과 전례 없는 군사 관련 갈등을 빚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돌연 도발을 멈추고 오랜 적대국인 한ㆍ미와 화해를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북 위협이 빌미인 군비(軍備)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두 나라가 곤혹스런 기색이다.

더 난감한 쪽은 일본인 듯하다. 30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팽창하는 중국과 더불어 북한의 핵 위협은 보수 성향 일본 정권이 재무장을 통한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데 유용한 구실이었다. 특히 꾸준히 미사일 실험을 해주는 북한은 노골적으로 대립하기 버거운 중국을 직접 표적으로 삼지 않고도 일본이 자위권 강화를 핑계로 군사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생 관계의 조력자였다.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는 게 우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목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지난달 임시국회에 자위대 설치를 근거를 명시하는 방향의 개헌안을 내고 논의를 시작하려 했다가 야당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자민당 개헌안에 명기된 영토 보존 조항이 학계에서는 영토 분쟁에 자위대를 동원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현재 아베 총리는 개헌 성사 여부를 가늠할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다. 선거 승리, 나아가 보통국가화를 가능하게 할 개헌까지 이끌어내고 싶은 아베 정권에게 한반도 해빙 기류는 이롭지 않다. 자국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불쏘시개 노릇을 해주던 북한이 당분간 제 기능을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숙원 실현에 제동이 걸릴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선택한 새 동력원이 한국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숙현 대외전략연구실장과 박병광 책임연구위원은 29일 공개한 보고서 ‘한일 초계기 갈등의 배경과 시사점’에서 한국 해군 함정 레이더가 일본 해상초계기를 조준했는지, 거꾸로 일본 초계기가 위협 비행을 했는지를 놓고 지난달부터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 군사 공방 배경에 대해 “아베 정부의 국내 정치적 배경과 야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형성되면서 북 위협 요인이 약화한 가운데 아베 정부가 한일 갈등을 지렛대 삼아 지지층을 모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한일 간 불화가 심해지면서 일본 내 아베 내각 지지도가 올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역시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비롯된 ‘재팬 패싱’(일본 배제) 불안감이 일본의 한국 공격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애초 형성된 남ㆍ북ㆍ미 3각 구도에 북한의 ‘다자 협상’ 거론으로 중국까지 가세하는 모양새가 되자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이 재편되는 마당에 자국의 전략적 이해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고 일본이 우려했을 수 있다”며 “남ㆍ북ㆍ미ㆍ중 4자 구도를 깨지 못할 바에야 한국을 건드려 미일 동맹을 재확인하고 북ㆍ중은 한 번 달래보겠다는 게 일본의 심산일 것”이라고 했다.

마침 불똥이 한국에 튀기에 적합한 조건도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박근혜 정부에서 양국 합의 하에 설립된 일본군 위안부 지원용 화해ㆍ치유재단 해산이 결정되고 우리 대법원에 의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까지 이뤄지면서 일본 입장에서 약속 파기로 여길 만한 과거사 변수가 새삼 떠올랐다. 반면 남북관계에는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우방인데도 홀대 당했다는 서운함을 많은 일본인들이 느꼈고, 이게 반한(反韓) 감정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해부터 적용될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지난해 내내 한국과 협상을 벌인 미국도 북 위협이 줄어드는 바람에 형편이 불편해진 건 일본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전반적인 미군 주둔비 분담 원칙 재설정을 염두에 두고 1년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당초 지난해 봄 미국이 요구한 협정 유효기간은 10년이었다. 북미ㆍ남북 대화가 지속될 경우 아무래도 군사 연습이나 시설과 장비에 투입되는 비용의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기존 분담금 규모를 최대한 길게 유지하는 편이 더 유리하리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명분이 약해지는 건 방위비 인상뿐 아니다. 지금껏 북한을 겨냥한 여러 군사적 조치들을 축소 조정해야 하는 처지에 미국이 맞닥뜨릴 수 있다. 특히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중국의 공세가 훨씬 거세지리라는 건 명약관화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소속 중국 전문가는 “소극적이던 종전 자세를 바꿔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ㆍ평화 협상에 적극 개입하는 식으로 중국이 ‘현상 변경’을 시도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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