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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유럽여행? 난 찬성! 아들며늘아 부디 꽃길만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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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유럽여행? 난 찬성! 아들며늘아 부디 꽃길만 걸어라”

입력
2019.02.01 04:40
수정
2019.02.0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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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시아버지 2~5년 차인 한성봉(왼쪽부터) 동아시아출판사 대표, 박종섭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장홍호 케이씨유니언 회장이 며느리와 아들을 향해 장미꽃잎을 뿌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시아버지 2~5년 차인 한성봉(왼쪽부터) 동아시아출판사 대표, 박종섭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장홍호 케이씨유니언 회장이 며느리와 아들을 향해 장미꽃잎을 뿌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또 한 해를 지나 설 명절이다. 고대하던 연휴는 찾아왔지만, 생각은 평소보다 많아진다. 당신이 그리는 명절은 어떤 모습인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 생각에 새벽부터 나물을 다듬는 시어머니와, 그 시어머니 옆에서 소매를 걷는 며느리. 그리고 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거실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시아버지? 당당하게 “난 그런 시아버지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새내기 시아버지 세 명이 ‘명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놓고 토론했다. 시아버지가 된 지 2~5년 째인 박종섭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장홍호 케이씨유니언 회장,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부터 해주세요.

박종섭(이하 박)= “저는 1953년생입니다. 올해로 진짜 사회적 ‘어르신’이 됐네요. 은퇴도 앞두고 있고요. 아들과 딸은 모두 출가했고, 손주도 넷이나 있습니다. 시아버지 된 지는 햇수로 5년이고요.”

장홍호(이하 장)= “박 박사님보다 5살 적은 1958년생입니다. 첫째부터 딸을 갖고 싶었는데, 맘대로 안 돼 아들이 둘이고요. 저도 시아버지 된 지 벌써 5년 차네요.”

한성봉(이하 한)= “제가 제일 새내기 시아버지네요. 저는 1960년생입니다. 예순이 되기 전 며느리를 둘이나 본, 요즘 보기 드문 케이스죠. 아들 둘이 재작년과 작년에 결혼 했습니다.”

파릇파릇한 시아버지들이시군요(웃음). 시아버지로 사는 것, 어떠세요?

한= “진짜 민망한 상황을 가리키는 옛말 중에 ‘시아버지 무릎에 앉은 것 같다’는 게 있대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는 정말 어색하고도 민망한 관계죠. 지난해 둘째 아들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며느리를 꼭 안아주라고 시켰어요. 그걸 못 하겠더라고요. 전통적 가부장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룰이나 생활 방식을 아주 명확하게 규정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재구성되는 과정이에요. 저도 거기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박= “며느리는 제 고교 동창의 딸이에요. 사돈이 되고 나니까 동창하고도 어색해지더라고요. 친구니까 당연히 반말을 했었는데 갑자기 존댓말이 나오기도 하고요. 어른들끼리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애들은 오죽하겠어요.”

장= “지난해 며느리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로 저와 아내가 평일에 손주를 돌보고 있어요. 저녁부터 아침까진 제가 주로 보지요. 제가 유치원 원장을 10년 했거든요. 손주가 36개월이 될 때까지는 가족 울타리 안에 있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에요. 아들 부부가 일요일 저녁에 손주를 데리고 오고, 금요일 저녁에 제가 아들네 집에 데려다 줘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며느리 얼굴을 봐서 그런지, 며느리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명절이 즐거운 유일한 사람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어요. 명절이 즐거우신가요.

한= “즐겁죠. 아들 둘과 며느리 둘이 전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어요. 모이면 재미있게 잘 놀죠. 소통 방법, 행동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즐겁습니다. 요새 시아버지를 ‘#G(샵지)’라고 부른다면서요? 저는 그런 게 좋더라고요.”

박= “제 나이에 비하면 저와 아내는 편하게 산 편이에요. 아내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 날 한번만 한복을 입었어요. 부모님이 ‘더 이상 한복 입는 일은 없다’고 선언하셨거든요. 저도 아들 내외를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며느리가 집에 와서 음식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음식을 잘 하겠어요. 명절마다 전은 무슨 전이에요? 명절 음식은 주로 아내가 준비해요.”

서재훈 기자
서재훈 기자

가장 어려운 명절 숙제가 차례, 제사잖아요. 차례, 제사 지내시나요.

한= “종교적 이유로 제사는 아주 간소하게만 치러요. 성묘는 가고요.”

박= “저도 같은 이유로 제사 안 지내요.”

장= “어머니 계신 고향으로 찾아 가서 차례를 지내요. 아들 내외도 종종 함께 가는데, 제가먼저 가자는 말은 안 해요. ‘설 계획이 어찌 되냐’고 슬쩍 물어 보기는 해요. 얼마 전에 며느리가 ‘아버님이 명절 아이디어를 내보시라’고 하길래, 가까운 데로 여행을 가 보자고 했어요. 차례 지내러 가면서 여행도 하는 거죠. 설 연휴 첫날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내려가면서 부안, 목포, 완도 쪽으로 돌아 보려고요.”

아니 그럼, 장 회장님은 연휴 내내 아들 내외랑 같이 계시는 거예요? (기자가 놀라서 묻자 박종섭 교수와 한성봉 대표가 ‘빵’ 터졌다.)

장= “네. 그래도 며느리한테 음식 만들게 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함께 여행하면서 맛있는 것 사 먹고 대화도 하는 거죠. 지난해에도 여수, 순천에 함께 다녀왔어요. 여행으로 명절을 보내는 덕분에 사돈댁이랑도 자주 왕래하게 됐고요.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 명절 설문조사.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1,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62.8%가 ‘설 연휴를 앞두고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낀다’라고 답했다. 남성(54.9%)보다는 여성(68.8%)이, 미혼자(54.0%) 보다는 기혼자(69.6%)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다들 그렇게 노력하시는데, 명절이라고 하면 ‘스트레스’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

박= “냉정하게 이야기 해 볼게요.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모두 행복한가요? 명절이라는 게 어른들만의 욕심 아닐까요? 명절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꼭 지켜야 할까요? 자식, 손자들까지 제 할아버지 묘에 찾아 가 인사하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바빠요. 괜한 것에 신경 쓰게 하면 안 되죠.”

한= “저보다 생각이 20년은 젊으신 것 같네요(웃음). 가부장제에서는 부모라는 지위에 아이들이 많이 눌려 있었어요.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가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세요. 어머니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일 테지만, 집에 가지고 오면 사실 대부분 버리게 돼요. 저는 어머니 배에서 나온 사람인데도 결혼해서 35년을 함께 산 아내 손맛에 익숙해진 거예요. 재미있는 건, 요즘 제 아내도 며느리한테 음식을 싸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처럼 자기 입맛이 절대 미각이라 믿는 거죠(웃음). 우리가 여전히 다름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명절에 아들 내외가 ‘연휴 내내 유럽여행 가겠다’고 한다면요?

박= “난 찬성!”

한= “저도요.”

장= “저도 찬성이요. 그런데 문화라는 건 어느 정도는 지켜 가면서 시대 맞게 바꿀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양가 부모님께 미리 인사를 다니고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간다든지요.”

자식들이 드리는 명절 용돈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세요.

박= “성의 표시죠.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이기도 하고요. 제가 그 돈 받아 어디 쓰겠어요. 한달 안에 애들한테 다시 돌아가죠. 저는 손자 봐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요. 할아버지도 손자를 키울 의무가 있는 거잖아요. 손자 키우는 재미를 돈으로 따질 수도 없고요. 부모, 자식 사이에 돈 계산을 해야 하나 싶어요.”

한=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고생해요. 더구나 저희 세대부터는 100세까지 산다는데, 명절 용돈까지 일일이 다 챙기려면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저작권 한국일보] 시아버지 된 지 2년이 된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가 수줍게 며느리에게 장미꽃을 건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시아버지 된 지 2년이 된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가 수줍게 며느리에게 장미꽃을 건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며느리들과 어떻게 소통하시나요. 카카오톡 단체 가족 대화방이 있나요.

박= “저는 있어요. 저희 부부랑 아들, 며느리가 만든 방이에요. 아내는 며느리랑 카톡을 따로 많이 주고 받고요.”

장= “저도 있어요. 며느리가 하루에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메시지가 20통은 될걸요? 좋은 기사나 이슈 같은 거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져요.”

한= “저는 단체방을 만들자고 하지 못하겠어요. 둘째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인사를 온다기에 식당에서 만났어요. 식사하면서 ‘옛날 같았으면 며느리가 한복 입고 인사 왔을 텐데’라고 했어요. 정말로 농담으로요. 다음 주에 며느리가 혼자 한복 입고 찾아 온 거예요. 말 한마디도 굉장히 조심해야겠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 뒤론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시아버지이셨나요.

한= “평생 며느리와 몇 마디 해본 적 없던 분이죠. 요즘말로 츤데레라고 하죠(웃음).”

장= “저는 고모도 한 분 안 계시고 제 형제도 남자만 다섯이에요. 아버지가 워낙 말씀이 없는 분이셨어요. 형제 간에도 지금 모이면 얘기를 많이 안 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겠어요. 그런 걸 보고 자라면서 ‘우리 가정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답니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 며느리 입장에선 별로 편하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 “딸과 며느리가 직장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어요. 딸은 둘째 낳고 두 번째 휴직 중이에요. 며느리는 둘째 낳고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요. 손주들이 연년생이라서요. 며느리도 제 인생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야 할 텐데, 혹시나 그러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많이 안쓰럽죠. 딸이나 며느리나, 부모로서 마음은 같아요.”

장= “며느리가 소문 내고 다니는 것 같아요. ‘나한테는 친정 아버지보다 시아버지가 낫다’고요. 아내한테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라’고 늘 얘기해요. 저도 많이 노력하고요. 며느리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저녁 7시예요. 제가 음식을 해서 아들 내외 집에 찾아 가기도 해요. 같이 저녁 먹으면서 대화하는 거죠. 며느리에게 요리법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아들, 며느리 삶에 얼마나 개입하시나요.

장= “며느리가 아내에게 스스럼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놔요. 아들, 며느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으면 아내가 아들 집에 가서 자고 오곤 해요. ‘엄마가 굳이 집에 찾아와 불편하게 자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고 아들한테 일러 주는 거죠.”

박= “아들, 문제에 부모가 깊이 들어가는 건 반대예요. 아이들이 요청하지 않는다면요. 모른척하고 간섭 안 하는 게 부모의 최선이라 생각해요.”

한= “호칭 문제는 예민하잖아요. 둘째 며느리가 첫째 며느리보다 두 살 많고 학교 선배이기도 해요. 원칙대로 하면 둘째가 첫째를 ‘형님’이라 불러야 하는데, 저는 그게 별로더라고요. 그러지 말라고 할까 하다가 놔뒀더니 자기들끼리 자연스럽게 정리하더라고요.”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는 시아버지들도 많아요. 그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한= “시아버지는 어쨌든 기득권이에요. 아들, 며느리는 약자고요. 우리가 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공감하고 소통하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야 해요. 아들, 며느리가 집에 자주 오는 걸 원하면, 일단 즐겁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저는 며느리 취향에 맞춰 주려고 해요. 이번 명절엔 스크린 야구장, 탁구장에 함께 가서 놀려고요.”

박= “아이들이 행복한 길을 스스로 찾도록 해 주세요. 어른들은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라 주면 돼요. 웬만하면 ‘내 의견’은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쉽게 뱉은 말 한마디가 며느리에겐 큰 고민거리로 남을 수 있거든요. 며느리 위주로 생각해야죠. 며느리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종속된 사람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들, 아들 가정, 그리고 우리 부부 행복을 위해서도 며느리의 만족도가 최상이어야 해요.”

장= “시아버지가 임신한 며느리 배를 만지는 건 굉장히 실례죠. 우리 며느리는 임신 8개월쯤 ‘아버님, 배 만져보세요’ 하면서 제 손을 배에 올려 놓더라고요. 수많은 대화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벽을 허문 덕분이겠죠. 며느리가 주로 하는 집안일을 시아버지가 같이 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를 봐 주거나, 저처럼 일주일에 하루쯤 요리를 해 준다든지요. 그렇게 하면서 저 스스로 배우는 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정리=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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