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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서주영 박사 만세!

입력
2019.01.30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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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이 가장 풍성한 곳은 어딜까? 서울이다. 서울에는 전국의 해산물이 다 모인다. 나는 전남 여수와 여천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정작 서울에 와서야 다양한 해산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충격은 바지락.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조개라고는 꼬막과 홍합밖에 보지 못했다. 꼬막은 사투리고 조개가 표준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여수에도 생선이 널렸지만 주로 부둣가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왔더니 주택가에 생선가게가 있었다. 생선 종류의 다양성에도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그 양이 질릴 정도로 많았다. 날렵한 꽁치를 처음 봤다. 그리고 궤짝에 꽁꽁 얼린 채 팔리는 생선을 봤다. 궤짝 길이의 커다랗고 배가 불룩한 생선이 좌우로 엇갈려서 놓여 있는데, 주인아저씨는 꼬챙이로 한 마리를 끄집어내어 몇 토막을 낸 후 고객에게 건네줬다. 전혀 식욕이 돋지 않았다.

한겨울 늦게까지 놀다가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국그릇에는 커다란 생선 토막 하나가 들어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특별히 챙겨주신 눈깔은 끝내 삼키지 못했지만 두툼한 생선살은 맛있었다. 친구 식구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 생선이 바로 궤짝에 꽝꽝 얼린 채 팔리던 그 생선이었다. 이름은 동태.

고등학교 때는 우리 집 밥상에도 명태찌개가 종종 오르곤 했지만 난 좋아하지 않았다. 맛이 문제가 아니라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궤짝에 들어 있던 동태가 얼리기 전에는 명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자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해.’라는 폭력적인 말에 등장하는 북어가 말린 명태라고 했다.

명태와 친해진 것은 1983년 대학교에 입학한 후의 일이다. 맥줏집에 노가리 안주가 있었다. 열 마리에 오백 원. 맥주 안주로는 최고였다. 노가리를 씹으면서 군사 쿠데타 세력의 핵심 인물에게 복수하는 듯한 쾌감을 얻기도 했다. 친구들은 노가리가 명태 새끼라고 했다. 생긴 것이나 맛을 보면 그럴 듯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아니, 어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커다랗게 자라는 명태를 굳이 새끼 때 잡아서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종류의 생선일 거라고, 이 친구들은 바닷가에 살지 않아서 그걸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노가리는 명태 새끼가 맞았다. 1963년부터 법으로 노가리를 잡지 못하게 했던 정부가 1970년부터는 노가리 어획을 허용했다. 아마 명태는 아무리 잡아도 끝없이 나오는 생선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럴 만도 했다. 1950~60년대에는 연 2만 톤 정도에 불과했던 명태 어획량이 1970년대에는 7만 톤이 넘었으니까 말이다. 1981년에는 10만 톤을 넘기기도 했다.

법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1976년에 이미 명태 어획량의 92%가 노가리였다. 새끼를 이렇게 잡아먹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1990년대에는 명태 어획량이 6,000톤으로 줄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정부는 잡을 수 있는 명태의 크기를 10cm(1996년), 15cm(2003년), 27cm(2006년)로 늘렸지만 이미 늦었다. 2008년에는 어획량이 0이었다. 한 마리도 안 잡혔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답은 책을 읽어봐야 알지만 ‘그 많던 명태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빤하다. 우리가 먹었다. 찌개, 국, 반찬이 아니라 안주로 다 먹었다. 이 정도면 제노사이드라고 봐야 한다.

명태를 사랑하는 우리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업 양식화에는 최고 선진국이다. 2014년부터 고성군 죽왕면의 ‘한해성 수산자원센터’에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그 책임자는 수산자원센터의 해양수산연구사인 서주영 박사. 그와 동료들은 바다에서 운 좋게 잡힌 자연산 명태 암수를 이용하여 인공수정 시킨 후 양식하고 방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122만 6,000마리를 방류했다. 처음 방류한 1,000마리에는 노란 플라스틱 표지를 부착했다. 이 가운데 네 마리가 다시 잡혔다. 그 넓은 동해바다에 놓아준 1,000마리 가운데 ‘무려’ 네 마리가 잡혔다는 것은 방류 사업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잡히지 않은 명태들은 동해 어디서인가 산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작년 말 동해안에서 명태가 잡혔다. 깊은 바다에서 한두 마리가 그물에 걸린 게 아니라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잡혔다. 이것들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로 방류된 명태의 후손은 아니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와는 별도로 자연적인 복원 과정 역시 보호해야 한다. 다행히 1월 21일부터 명태 포획금지 기간이 설정되었다. 명태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크기와 상관없이 잡지 못한다. 명태가 알을 낳으려면 최소한 3년은 자라야 한다. 앞으로 3년만 더 명태는 우리나라 생선이 아니라 러시아 생선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더 이상은 노가리를 씹지 말자.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한다. 서주영 박사가 건강해야 동해 명태도 건강하다. 서주영 박사 만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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