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1일 그린즈버러 싯-인이 시작됐다. 싯인은 당연한 권리의 행사란 점에서 연좌농성과 다르다. americanhistory.si.edu

1960년 2월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Greensboro)의 대형 슈퍼마켓 울워스(Woolworth)의 식당 카운터에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대(A&T) 학생 4명이 자리를 잡았다. 백인들에게만 밥을 팔던 식당이었고, 당시는 버스, 도서관, 공원 벤치까지 흑인과 백인의 자리가 구분(분리-차별)되던 때였다. 식당 측은 당연히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그들이 법을 어긴 게 아니어서 어쩌지 못했다. 그들을 도운 백인 사업가 랄프 존스(Ralph Johns, 1916~1997)의 주선으로 현장에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 네 명은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그 소식은 언론을 통해 남부를 비롯,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다음날 더 많은 이들이 동참했고, 5일께는 소수의 백인 포함 300여명에 달했다. 식당은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했다. 그린즈버러의 식당들은 그해 여름 무렵부터 흑인들에게도 자리를 제공했다. ‘그린즈버러 싯-인’이었다.

3월 말 무렵 ‘싯-인(Sit-In)’ 열기는 미국 13개 주 55개 도시로, 도서관 등 모든 공공시설로 확산됐다. 모든 곳에서 저 불복종 저항운동이 평화롭게 이어진 건 아니어서, 다수가 불법침입, 소요, 비행 등 혐의로 체포됐고 몸싸움 등 충돌을 빚기도 했지만, 그들의 운동은 미국 전역의 반 인종차별 흑인 인권운동으로 확산됐다. 그해 4월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가 출범했고, 이듬해 여름 저 유명한 ‘자유의 여름(Freedom Rides)’ 버스가 남부 전역을 돌았고, 63년의 ‘워싱턴 행진’을 거쳐 64년 시민권법이 제정됐다.

처음 싯-인을 시작한 청년 넷은 보수 백인들에게 저 사태의 ‘원흉’으로 꼽혀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끝에 그린즈버러를 떠나야 했다. 에젤 블레어 주니어(1941~)는 교사가 됐고, 프랭클린 맥클레인(1941~2014)은 화학회사에 취직해 샐러리맨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조셉 맥닐(1942~)은 ROTC 출신 공군 장교로 입대해 2000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유일하게 금세 그린즈버러로 돌아온 데이비드 리치먼드(1941~1990)는 극심한 따돌림 속에 잡역부로 살다가 만 49세로 숨졌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부회장을 지낸 랄프 존스는 싯-인 직후 자신이 운영하던 의류업을 접고 언론인이 됐고, 70년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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