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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권익 보호, 한국어학당선 남의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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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권익 보호, 한국어학당선 남의 얘기죠”

입력
2019.01.29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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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비정규 계약직ㆍ단기 근로자 등

학교마다 처우 마음대로

임금은 시간강사의 절반 그치고

강의시간 줄어 4대 보험도 제외

“생계에 잡일 차출돼도 말 못해”

“유령 같은 존재였네요”.

최근 김나래(43ㆍ가명)씨는 상담 중 노무사가 던진 이 말에 가슴이 아팠다. 시간강사도 아닌, 근로자도 아닌 자신의 처지를 잘 표현해서다.

석사학위를 받고 교원자격 시험을 통과한 김씨는 어느 대학의 한국어학당 강사로 10년 넘게 일해왔다. 학교는 김씨를 ‘시간 강사’라 부르며 매 학기 강의 시수에 따른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강의료는 시간강사의 절반이라 월 수입은 160만원 정도에 그친다. 최근엔 강의 시수가 12시간 아래로 줄어 4대 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빠졌다.

시간 강사의 권익 보호를 내세운 강사법의 8월 시행을 앞두고 대학가에 태풍이 불고 있다지만, 김씨 같은 한국어학원 강사들에겐 그마저도 남의 일이다. 김씨는 “동료들끼리 모이면 ‘우리는 대체 무슨 존재인가’ 한숨 쉬기 일쑤”라고 말했다.

28일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 수가 14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 한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만도 4만명 이상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대학 부설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열악한 처우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 존재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학당 강사’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은 강사가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 2011년 “정규 교과 이외 과목을 강의하는 어학당 강사는 고등교육법(강사법)상 시간강사로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는 학교 마음대로다.

서울대엔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강사 39명이 있다. 시간강사가 아닌 비정규 계약직이니까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매 학기 새로 계약서를 써왔고 또 써야 한다. 학교는 이들을 시간강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강사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 곳 강의료는 시간당 4만 1,000원 정도다. 어학원들 사이에선 높은 수준이라지만 다른 시간강사의 절반이다. 연세대도 비슷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시간강사가 아닌 근로자로 대우하는 곳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고려대는 어학원 강사 가운데 상당수를 3개월 단위 단기 근로자로 채용한다. 석 달 계약이니 ‘안정성’은 찾기 어렵다. 2015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ㆍ사드) 사태로 중국 유학생이 줄자 고려대는 2017년 아무 예고도 없이 20시간이 넘던 강의 시수를 14시간으로 줄였다. 강사 A(31)씨는 “생계가 어려워 다른 학교에 강의를 나간 강사들에게는 시수를 10시간까지 줄이기도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학당 강사들은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같은 학교에서 한국어 교육 석사, 박사를 하고 강의를 하는 처지에 말할 분위기가 아니다. 한국어 강사 최모(38)씨는 “각종 행사에 불려나가고, 낮은 수당에 연구 프로젝트에 차출되어도 불만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시수 제한 등 생계 문제가 걸려 있으니 더 그렇다.

대학들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간주했지만 강사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내부적으로 개선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관계자 역시 “학생 수 변동이 심한 편이라 어학당 운영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계약관계 문제를 앞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어교육학과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경 경동대 한국어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어 강사가 되기 위해 한국어교육 전공을 선택했다가 강사들의 실태를 보고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며 “일정한 신분과 처우를 보장해야 외국인에게 제대로 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서울대 언어교육원 한국어 강사들이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앞에서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이 관철될 때까지 학교 앞에서 피케팅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제공 대학노조 서울대지부/2019-01-28(한국일보)
서울대 언어교육원 한국어 강사들이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앞에서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이 관철될 때까지 학교 앞에서 피케팅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제공 대학노조 서울대지부/2019-01-28(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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