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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지부동의 본능

입력
2019.01.2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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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졌을까? 대통령이 현장을 다니며 정책 부재에 대한 질타와 함께 규제 혁신을 주문하고 복지부동하지 말 것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도 같은 패턴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목민관의 소극적 태도를 꾸짖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복지부동이 반드시 공무원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조직에서 발생하며, 특히 성과평가가 어려운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복지부동은 위험으로부터의 회피라는 방어적 본능에서 나온다.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적 본능의 발동이다. 본능은 강하게 작동하는 탓에 이를 뛰어넘으려면 위험의 제거와 반대급부라는 더 강한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정신자세만을 강조하는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공적인 업무는 법에서 세세하게 정한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공무원에게 일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재량을 준 행위로 나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재량이다. 사회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세세한 규정을 두기 어려워 재량을 주는 입법이 늘어나고 있다. 재량은 책임이 수반되므로, 대체로 앞서 선배들이 해봐서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된 관행을 따르게 된다. 그런데 선행된 일이 소극적인 쪽으로 하향평준화된 것이라면 소극적 행정이 고착화된다. 여기에 평등대우가 개입되면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소극적 행정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민원인이 원하는 대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민심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하겠지만 그렇다고 이익집단화 된 민심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국민과 함께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그 고리를 잘라주어야 한다.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공식적 기회를 통해 조직 차원의 업그레이드로 개인적 위험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복지부동의 또 하나의 원인은 평가체계다. 공적 업무는 성과측정이 어렵다. 공익이라는 말을 관성적으로 쓰지만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것과 같다. 평가기법의 개발은 그래서 중요하다. 평가는 승진과 직결된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경쟁은 더 심화된다. 그러나 성과평가의 미비로 적극적으로 행한 것은 인정받지 못하면서 아주 작은 한 번의 실수는 치명적 일격이 된다.

감사제도도 바뀔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도는 실수를 동반하기 쉬우나, 이는 고스란히 감사지적사항이 된다. 여기에 일단 유죄로 추정하고 잘 방어하면 무죄가 되는 감사장 분위기는 일선 담당자를 더 위축되게 만든다. 감사원에서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두고 있지만 면책대상에 포함될지 불안해하기 보다는 차라리 안전한 소극적 태도를 취하기가 쉽다. 따라서 감사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정책과 성과를 감사 대상에 포함하는 우리 제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불안하다면 비조치 의견서처럼 감독기관에 자유롭게 먼저 의견을 묻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흔들리는 직업공무원제도 복지부동의 원인이다. 공무원에게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고 그 책임을 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 직업공무원제가 철밥통을 만들어서는 안되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선택으로 쪽박을 차거나 대박을 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적극행정의 탈을 쓰고 부정청탁을 수용하거나 준비없는 즉흥적 적극성으로 예산낭비를 초래하고, 기관장의 성과 과시 목적으로 담당자에게 막무가내 식의 무리한 처리를 강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균형의 확보는 시스템 구성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복지부동에 대한 대응은 주로 소극행정 무관용과 같은 아젠다였다. 그러나 단순히 정신자세만을 강조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은 스포츠나 공직사회나 마찬가지다. 답은 방어적 본능에 의해 유인된 구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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