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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1개월 넘긴 예멘 호데이다 휴전, 왜 실패하고 있나

입력
2019.01.25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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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아랍동맹군이 예멘 수도 사나에 대대적 공습을 가한 이튿날인 20일, 완전히 폐허가 된 한 공장에서 잔해를 살펴보던 예멘인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다. 외신들은 이 공격으로 인해 최소 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면서 “아랍동맹군은 후티반군이 통제하는 최소 20곳 이상의 군사시설 등을 목표로 공습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3일 맺어진 예멘 정부군과 후티반군의 ‘호데이다 지역 휴전 합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공허한 빈말이 되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사나=EPA 연합뉴스
지난 19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아랍동맹군이 예멘 수도 사나에 대대적 공습을 가한 이튿날인 20일, 완전히 폐허가 된 한 공장에서 잔해를 살펴보던 예멘인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다. 외신들은 이 공격으로 인해 최소 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면서 “아랍동맹군은 후티반군이 통제하는 최소 20곳 이상의 군사시설 등을 목표로 공습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3일 맺어진 예멘 정부군과 후티반군의 ‘호데이다 지역 휴전 합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공허한 빈말이 되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사나=EPA 연합뉴스

“반군 측이 휴전 합의를 반복적으로 어겨 민간인 37명이 숨지고 312명이 다쳤다.”

지난달 12일 예멘 정부 소식통은 현지 미디어 ‘알마스다르온라인’에 이 같이 밝혔다. 예멘 정부와 후티반군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나 최대 격전지 호데이다 지역에서의 휴전에 합의한 지 한 달째를 맞은 시점이었다. 이틀 후, 예멘 정부는 후티반군의 휴전 협정 위반 사례가 434건이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휴전 합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건 예멘 정부, 그리고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ㆍ아랍에미리트(UAE) 주도의 아랍동맹도 마찬가지다. 예멘 수도 사나에 거주하는 현지 기자 아흐마드 압둘카림은 ‘민트프레스 뉴스’ 기고를 통해 사우디 동맹이 이미 지난달 27일부터 호데이다 폭격을 재개했다고 전했다. 압둘카림에 따르면 이날 하루 후티반군이 기록한 사우디 동맹의 휴전 위반 사례는 69건이다.

또 다른 예멘 언론인 후사인 알부카이티는 “휴전은 출발부터 실패했다”고 지적해 온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친(親)후티 언론인으로 분류되지만, 주류 외신 및 대안 매체를 통틀어 현지 소식을 전방위적으로 보도해 온 독보적 인물이다. 알부카이티는 휴전 이후에도 호데이다 외곽 지역이 거의 매일 폭격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멘 정부군과 후티반군이 지난달 13일 합의한 이른바 ‘스톡홀롬 합의’는 △전쟁포로 교환 △호데이다 지방 휴전 △유엔의 휴전 감시 등을 골자로 한다. 휴전은 예멘 서부의 호데이다 항구는 물론, 살리프 항구와 라스이사 항구 등을 포함한 호데이다 지방(Hodeida Govonorate) 전역에 적용된다. 예멘으로 들어오는 식량과 물자의 80% 이상이 통과하는 호데이다 항은 예멘의 생명줄이자 전략적 요충지다. 사우디와 UAE 동맹이 이 곳을 계속해서 폭격, 지난해 6월부터 조금씩 탈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항구는 기능이 마비됐고 예멘은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치달았다. 그 숨통을 틔우자는 게 ‘호데이다 휴전’의 즉각적인 기대 효과였다. ‘인도주의적 휴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휴전 한 달의 성적표는 폭격 현장만큼이나 처참하다. 이유가 있다. 우선 휴전의 직접적 계기가 800만명이 아사 위기에 처한 예멘을 구하자는 당위적인 의제였다기보단, 사실상 지난해 10월 사우디 당국에 의해 암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예멘 폭격에 연료와 정보를 제공해 온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반(反)사우디 여론이 들끓으면서 예멘 전쟁이 다시 주목 받았다. 이 모멘텀을 ‘유엔사무총장 파견 예멘특보 사무소(OSE Yemen)’가 휴전으로 적극 밀어붙였다. 인도주의적 동기보단 카슈끄지 사태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 이른바 ‘카슈끄지 효과’가 내포된 휴전이었다.

예멘 정부군과 후티반군의 ‘호데이다 휴전 합의’가 공식 발효된 지난달 18일, 호데이다 지역에서 벌어진 양측의 총격전 소식을 전하고 있는 현지 방송매체의 뉴스 화면. 로이터 연합뉴스
예멘 정부군과 후티반군의 ‘호데이다 휴전 합의’가 공식 발효된 지난달 18일, 호데이다 지역에서 벌어진 양측의 총격전 소식을 전하고 있는 현지 방송매체의 뉴스 화면. 로이터 연합뉴스

한계는 뚜렷했다. UAE와 함께 예멘 전쟁을 설계한 사우디는 카슈끄지 암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조금이라도 무마시키고자 예멘 휴전을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사나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사나 센터’가 22일 발표한 보고서 ‘굶주림, 외교, 그리고 무자비한 친구들: 2018년 예멘 연감’에는 그런 암시가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톡홀롬 협상이 끝나갈 무렵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사우디 권력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회동이 있었다. 뒤이어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에 망명 중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호데이다 휴전에 합의하라’고 했다. 이는 스톡홀름에 파견된 예멘 대표단의 서명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무함마드 왕세자의 ‘지시’였던 셈이다.

합의 나흘 후인 지난해 12월 17일, 마틴 그리피스 유엔 예멘 특사는 “18일부터 휴전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공표했다. 12월 21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만장일치로 결의안 2451을 통과시켰다. 스톡홀름 협정이 승인됨에 따라, 유엔 휴전감시단 격인 병력재배치조정위원회(RCC) 선발대 20명이 파견됐고 30일간의 ‘휴전 감시’ 임무가 시작됐다. 그러나 휴전 초기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엔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권한도 불명확했다. 안보리는 이달 15일에야 감시단을 75명으로 늘렸고, 활동기간도 6개월로 연장시켰다.

현재 호데이다 휴전의 가장 두드러진 실패는 ‘병력 재배치’ 문제다. 합의문엔 “호데이다시(市)는 물론, 호데이다ㆍ살리프ㆍ라스이사 등 항구 3곳의 군대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즉 이들 지역에서 군대가 먼저 물러나야 함을 명시한 문장이다. 후티반군은 ‘2주 안’에, 나머지 군도 ‘휴전 효력 발휘 21일 내’에 합의된 지역으로 각각 철수해야 했다. 후티반군은 지난달 29일 호데이다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군은 휴전 21일째인 이달 8일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았다. 후티반군은 거세게 반발하며 ‘17일 RCC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군 철수 문제부터 뒤틀린 건 휴전 합의문의 주요 단어들이 제대로 정의(definition)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휴전 이후 모든 군대가 철수한 다음에는 누가 해당 지역에 ‘재배치되어’ 치안 담당을 맡을지에 대한 것도 모호했다. 합의문에는 “양측이 각각 자기 진영에서 엄선한 이들로, RCC가 동의하는 일부 현지 부대(local forces)가 이 지역을 통제한다”고 기재됐을 뿐이다. ‘현지 부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자신한테 유리한 해석들만 각각 내놓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호데이다 휴전 합의’가 체결된 지 열흘 후인 지난달 23일, 패트릭 캄마에르트(가운데) 유엔 휴전감시단장이 예멘 수도 사나의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호데이다 휴전 합의’가 체결된 지 열흘 후인 지난달 23일, 패트릭 캄마에르트(가운데) 유엔 휴전감시단장이 예멘 수도 사나의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사나 센터는 ‘현지 부대’가 예멘 국내법에 따른 국군일 수도, 지난해 말 기준 호데이다 지역을 통치하던 후티반군 정부 및 반군 내 인물들일 수도 있다고 봤다. 또, ‘후티반군의 호데이다 탈환 이전인 2014년 당시의 관할 부대를 복귀시킨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호데이다 현지인을 고용, 정부군과 반군이 철수한 빈자리를 채우는 부대’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구였던 것이다.

골치 아픈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호데이다에는 후티반군, 예멘 정부군 외에도 사우디ㆍUAE의 일부 군대가 주둔 중이다. 예멘인은 아닌, 그러나 현장에 있는 두 나라 군대를 ‘현지 부대’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논쟁거리로 이어진다. 게다가 정부군 명령 체계 밖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민병대도 호데이다 일부를 꿰차고 있다. ‘전국저항군(NRF)’이라는 민병대는 2017년 12월 후티반군한테 살해된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조카 타리크 살레가 이끄는 부대로, UAE가 지원하고 조종하는 부대다. 설령 후티반군과 정부군이 완전히 호데이다에서 철수한다 해도, NRF 같은 무장 조직의 활동은 휴전을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다. 스톡홀롬 합의문은 이런 상세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호데이다 휴전 1개월을 넘긴 지금, 양측의 합의 위반 건수가 세 자리 숫자에 달하면서 ‘휴전 붕괴’도 초읽기에 들어간 듯하다. 실패해선 안 되는, 인도주의적으로 절박한 이번 휴전은 그러나 ‘모호하고 엉성한 합의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평화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없는 한, 어떤 휴전 합의도 휴지 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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