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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손혜원 의혹’ 보도가 놓친 것

입력
2019.01.23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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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논란에 밀린 이익충돌 이슈

복잡ㆍ모호한 세상사 제대로 담을

정교한 스토리텔링 고민할 때

종방을 앞둔 화제의 드라마 ‘SKY 캐슬’을 뒤늦게 몰아봤다. ‘상위 0.1%’ ‘일그러진 욕망’ ‘사교육 광풍’ 같은 자극적 소재를 막장스럽게 풀었을 거란 지레짐작과 달리(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꽤 괜찮은 드라마였다. 가장 끌렸던 건 주ㆍ조연 할 것 없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점이다. 더불어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지 않는다. 바라건대, 평생 ‘마마보이’로 살아왔음을 처절하게 깨닫고도 끝내 ‘엄마 탓’을 벗지 못하는 의사 강준상이 결말에 이르러 독립된 인간으로 당당히 서는 ‘판타지’ 따윈 없었으면 한다. 강고한 승자독식 피라미드, 그 꼭대기를 향한 욕망, 경계가 모호한 선의와 악의, 우연과 필연, 관계와 관계가 얽히고 설킨 현실의 한 단면을 섬뜩하면서도 냉정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으로도 족하다. 후일담을 어떻게 쓸지는 우리 몫이므로.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드라마를 몰아보며 최근 화두처럼 붙들고 있던 고민을 떠올렸다. 저널리즘은 이 복잡한 세상사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가, 아니 제대로 그려낼 수 있기는 할까. 리베카 솔닛의 말을 빌리면, 어떻게 해야 “여간해서는 확실성과 명료성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사에 대해, “섬세한 뉘앙스와 복잡성을 명쾌한 이분법 속에 욱여넣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모호함과 양면성, 불확실성, 미지의 것, 기회 등을 인식할 줄 아는 지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내 깜냥으론 해답을 찾기 벅찬 주제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언론은 원고지와 납 활자가 노트북과 컴퓨터조판으로 대체되고 갓 인쇄된 따끈한 종이신문의 매력이 디지털과 모바일의 공세에 맥없이 쓸려나가는 쓰나미급 변화를 종종걸음으로 쫓으면서도, 정작 가장 큰 무기인 ‘스토리텔링’을 더 정교하고 더 설득력 있게 벼리고 발전시키는 데는 게을렀던 게 아닐까.

손혜원 의원 논란을 보면서 그런 고민이 더 깊어졌다. SBS 첫 보도를 보고 나는 판단을 유보했다. 문제는 있으나 ‘부동산 투기’로 비판하기엔 애매했던 탓이다. SBS 관계자는 “투기냐 아니냐가 아니라 관련 정보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주변인에게 매입을 권유해 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 온당하냐는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시청자는 ‘투기 의혹’으로 받아들였고, 홍보전문가인 손 의원은 이를 놓치지 않고 “선의”를 주장했다. SBS는 후속보도에서 ‘이익충돌금지’ 위반을 부각했으나 정치권과 다른 언론들이 가세한 공방전은 여전히 ‘투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 의원이 문화행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더 면밀한 검증이 필요한) 다른 의혹들을 걷어내고 목포 구도심 문제만 살피면 팩트는 대체로 명확하다. 문제는 이 사실들을 어떻게 엮어 보여주느냐다. 스토리텔링 전문가인 헥터 맥도널드는 저서 <만들어진 진실>에서 ‘경합하는 진실’이란 개념을 앞세워 거짓을 동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한다. “팩트보다 설득력 있는 스토리” 편집의 다양한 기술을 펼쳐놓을 뿐 아니라 스토리를 다루는 이들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경고한다.

언론들이 ‘눈먼 분노’를 부르기 쉬운 ‘투기 의혹’보다 더 근본적인 ‘이익충돌 금지’ 위반 문제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게 나라냐!”는 정치권 일각의 과잉 대응이나 검증이 빠진 일부 언론의 의혹 보도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 제정 당시 밥값 제한 등 곁가지 논란에 휩쓸려 놓쳐버린 공직자의 ‘이익충돌 방지’ 규정을 다시 논의하거나 쇠락한 구도심 재생 사업의 바람직한 모델을 모색할 길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혹자는 언론의 빈약한 취재ㆍ보도 윤리 문제를 지적한다. 내부자로서 더 고민인 것은 세상사를 담아내는 방식이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미래는 더 불투명해졌는데, 언론이 그런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 혹은 기술은 여전히 투박하고 원고지 시절의 문법에 붙박혀 있지는 않은가. 손 의원 논란의 결말과는 별개로 곱씹어야 할 과제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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