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서울시, 을지로 재개발 전면 재검토… “식당 재벌 지키려 제동” 반발도

알림

서울시, 을지로 재개발 전면 재검토… “식당 재벌 지키려 제동” 반발도

입력
2019.01.23 17:09
수정
2019.01.23 19:40
9면
0 0

“오래된 가게 보존 추진” 세운상가 철거ㆍ정비도 보류 결정

올해 말까지 종합대책 마련키로… 건물주-상인 등 갈등 격화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을지면옥이 보존된다. 배우한 기자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을지면옥이 보존된다. 배우한 기자

서울시가 을지면옥, 양미옥 등 도심의 오래된 가게(老鋪ㆍ노포)를 보존하기로 했다. 일방적인 도시재생개발로 점점 사라지는 옛 것의 가치를 재평가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반면 웬만한 기업을 능가하는 식당재벌급 노포를 지키기 위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건물주와 임대 상인들의 반발도 거세 후폭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23일 브리핑을 갖고 “현재 을지로ㆍ청계천 일대에서 진행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을 도심전통산업과 노포 보존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 일대 재개발은 지난해 일부 지역의 철거가 시작되면서 “옛 골목과 노포를 허물고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박원순 시장이 “재개발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에 내놓은 조치다.

우선 을지면옥과 양미옥은 중구청과 협력해 강제로 철거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가게가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에 따라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게 명분이다. 시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이어져 내려오는 시설, 기술, 업소나 생활모습, 이야기 등 유ㆍ무형의 자산을 생활유산으로 정했다. 법제화된 제도가 아니다 보니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철거에 대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강 실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정비 사업에선 서울의 역사와 시민 삶을 담고 있는 유ㆍ무형의 생활유산은 철거하지 않고 보존을 원칙으로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공구상가가 밀집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은 종합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기존 상인의 이주 대책이 미흡하고, 전면 철거에 따른 산업생태계 훼손 우려가 크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 구역은 지난해 12월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해 사업 시행의 초기 단계다.

시의 이번 발표는 속도 조절에 가깝다. 전면 철거나 전면 보존이라기보다는 연말까지 실태조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업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지난해부터 철거가 진행된 세운3-1, 4ㆍ5구역에서는 그대로 재개발이 진행된다. 재개발은 시행사가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면 보상 절차를 거쳐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머지 구역에서는 기존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될 수도 있고, 철거를 위한 관리처분인가를 내주지 않거나 정비구역을 재조정해 노포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업계획이 수정될 수도 있다.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현재 보상이 협의 중인 세운3-2, 6ㆍ7구역과 지난해 12월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세운3-3구역에서는 일단 보류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을지면옥은 3-2구역, 양미옥은 3-3구역 내 있다.

조남준 시 역사도심재생과장은 “재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지금 그대로 두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노포를 보존하고 영세 상인들에 대한 대책들이 실효성이 있는지 지주, 상인 등 다양한 관계자와 협의해 나가면서 연말까지 사업계획에 대한 조정 가능성이나 조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에 제동을 건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강 실장은 “2014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그 동안 추진하다 보니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과 시민 인식이 달라졌다”며 “커피한약방(을지로 유명 커피숍)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곳도 생기고, 생각지 못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변화에 맞추기 위해 여러 의견을 듣고 계획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을지로의 옛 골목은 최근 과거의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뉴트로(New와 Retro의 합성어)’ 열풍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재개발에 찬성해온 세운3구역 토지주 100여명이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재개발을 예정대로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재개발에 찬성해온 세운3구역 토지주 100여명이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재개발을 예정대로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건물주와 지주, 세입자인 상인들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이날 시청 앞에는 세운3구역 영세토지주 100여명이 모여 항의집회를 가졌다. 세운3-2구역에 토지 36㎡(11평)를 가지고 있는 조진현(75)씨는 “옛날 건축양식을 보존한다면 모를까 여긴 슬레이트 지붕에 아주 열악한 지역이다”며 “식당재벌 을지면옥 보존한다고 나머지까지 불똥이 튀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년 넘게 재개발을 기다려왔는데 시가 여론에 밀려 일방적으로 입장을 번복했다며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같은 시간 50m 떨어진 곳에서는 시의 재검토 결정을 지지하는 상인과 시민운동가 30여명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은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가장 오래된 공업사들이 모인 세운3구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우려된다”며 “1년의 시간을 벌었으니 시가 주민 이야기를 경청하고 주민 중심이 되어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계천ㆍ을지로 장인들과 상인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존하라”고 촉구했다. 배우한 기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계천ㆍ을지로 장인들과 상인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존하라”고 촉구했다. 배우한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