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 전 대법관은 기각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 마이크를 손으로 치우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71년 사법부 역사에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구속됨으로써 7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는 마침표를 찍고 죄의 유무와 처벌 수위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펼쳐지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새벽 “범죄 사실 가운데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이 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계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전날 영장실질 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양 전 대법원장은 곧바로 수감됐다.

법원은 사법농단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법원은 특히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했다는 검찰 수사의 진술과 증거를 대체로 인정했다. 재임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40여 개가 넘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양승태 사법부에서 사법행정을 총괄했던 박병대(61)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박 전 대법관 영장심사를 맡은 같은 법원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영장실질 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박 전 대법관은 곧바로 귀가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의 실무를 담당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됨에 따라 7개월 넘게 이어져온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비록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박 전 대법관의 영장은 기각됐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 2명의 신병을 모두 확보한 만큼, 검찰은 향후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에 법조계, 특히 법원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공개하지 않은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법부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흑역사의 기록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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