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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험의 외주화’ 막을 조각난 일터의 해법 찾기

입력
2019.01.2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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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또 20대 청년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철강공장에서 자동문 설치 작업을 하다가, 화학물질 제조업체에서 저장탱크 점검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조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관리 부실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김용균씨도 비슷한 사례였다. 지난 연말부터 한 달 새 3명의 청년 노동자가 안전사고로 숨졌다.

최근 몇 년 간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연간 1,000여명이나 된다. 하루 평균 3명이 산재로 숨진 셈이다. ‘산재 공화국’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열악한 작업장 안전시설과 안전관리 부주의가 원인 중 하나다. 문제는 정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산재사고가 더 많다. 그 사고들 중 다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 6년 사이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85%에 달했다. 부상자 또한 하청 노동자(98%)에 집중되었다.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하청이란 이유 때문에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장비도 없이 홀로 작업을 했다. 원청의 책임은 미약했다. 산재 사망사고로 사용자가 형사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작년 연말 정부가 소위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했다. 1996년 산안법 개정 이후 28년 만에 원청의 처벌 수위 강화나 안전의무조치 그리고 유해·위험 업무의 도급이 원천금지 된다. 2016년 구의역 김군 때도 못했던 원청의 책임 처벌이 강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위험의 외주화는 막을 수 있을까. 아마도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고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개정 법률은 여전히 보호대상을 ‘일부 직종’으로 제한했다. 국회 여야 합의 과정에서 발전정비, 항공, 철도 등의 업무를 포함하지 않았다.

또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 반발을 고려해 ‘작업중지명령 요건’을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한정했다. 현재는 화력발전이나 지하철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전면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개정된 법률에서는 사실상 사업장 전면 작업중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산업현장에서 제2의 김용균은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제 우리 사회가 노동안전과 기준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앞으로 산업안전은 더 많은 분야, 더 많은 하위 기업들까지 책임과 범위를 넓혀야 한다. 더 이상 일만 시키고 책임은 지지 않는 원청의 행태는 그냥 둬선 안 된다. 영국이나 캐나다의 ‘기업살인법’처럼 고용주 책임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또한 산재사고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장소를 원청의 사업장 바깥까지 확대해야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아울러 이제는 산업현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간 노동안전 문제는 중앙정부의 역할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미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설정하고 안전업무 직영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그리고 안전대책(2인1조, 인력충원)을 선제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모두 지난 연말 그리고 올해 초에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들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것들이다. 서울시의 노력으로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고장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사망사고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지방정부 최초로 산업안전 및 노동환경 전담 조직까지 신설하여 노동안전의 문제를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매김시켰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적 인권으로 노동하는 사람의 안전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 2016년 7월 28일 구의역진상규명위원회의 ‘노동안전선언문’에서도 지방정부의 노동안전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안전은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이고,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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