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7>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입대라는 근원적 억울함 풀게 할 복무 형식의 변화 등 고민해야
왜 성평등 사회 만들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접근 필요”
권인숙 원장은 “학교 현장에서부터 돌봄 노동에 남성이 참여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라며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라는 도식을 강조하기보다 성 평등을 합리적으로 가르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재훈 기자

“20대의 젠더(genderㆍ성) 갈등을 고민하려면 징병제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최근 저희 연구에 따르면 20대 남성성은 40, 50대 남성성과 매우 다릅니다. 위계성, 서열성, 가부장성이 아주 약한 세대인 거죠. 20대 남성은 성 평등 관련한 질문에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한순간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지 모른다고 온 사회가 경고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이고, 공정성의 욕구가 아주 큰 세대인데, 가장의 역할, 남자다움의 논리와 애국주의로 대충 얼버무린 현재의 징병제는 지금의 20대 남성과 앞으로 20대가 될 세대와 어울리지 않는 면이 너무 크죠.”

최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만난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파편화된 사회를 공감사회로 이끌기 위한 주요한 화두로 ‘20대 남성’과 ‘징병제’를 던졌다. 갈등 해결을 고민하고, 젠더 이슈에 가장 민감하며, 사회 변화에 대한 욕구 수준이 높은 20대의 삶과 가치관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이유다.

권 원장은 1986년 대학생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부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던 중 형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사실을 고발한 당사자다.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소장 등을 지냈고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작년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문제 공론화 이후 출범한 법무부 '성희롱ㆍ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적잖은 20대 남성들은 본인이 남성으로서 혜택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과거의 권위적 남성성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세대”라며 “동시에 자신의 행복과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에 징병으로 인해 어떤 생산적 계획도 갖추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이런 징병 문제의 복합적인 요소에 정직하게 접근하지 않으면서 젠더 갈등만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한 면이 크다”라며 “이제라도 징병제의 총체적 변화와 같은 큰 주제부터 복무 형식의 대대적 변화, 기간의 축소 가능성, 입대 시기의 예측성을 높이는 방안, 여성 참여 방안, 복무 생활을 합리화하는 아이디어 등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최근 국방부가 일과 후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는 등 새로운 생활 방식을 도입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은 잠깐만 뒤처져도 부귀영화를 잃는 게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는 시대를 살아가며 하루하루 막대한 긴장감을 견뎌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대는 ‘국가는 왜 이렇게 내 삶을 힘들게 하나’라는 근원적인 억울함을 갖게 하죠.”

군 문제를 더 이상 성 평등 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만 여길 게 아니라, 출발점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권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20대 남성의 정권 지지율 하락’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보다 입체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20대 남성의 정권 지지율 하락 원인을 놓고 일각에서 막연히 ‘젠더 문제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자체가 남성 집단의 삶을 너무 얇게 보려는 방관적 태도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댓글과 일베 등의 일부 인터넷 게시물로 과잉 대표되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20대 남성 다수는 보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며, 많은 토론을 하고, 다양한 삶의 가치관과 고민을 가진 채로 최근의 젠더 담론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답한 20대 남성은 지난해 7월과 11월 각각 14.6%, 10.3%로 조사됐고,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율도 45%에 달했다. 권 원장은 “20대 남성 무리 안에도 편차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우리 조직 문화에서 서열적 폭력성, 성차별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조사 결과를 해석했다. 이어 “스웨덴만 봐도 ‘성 평등이 행복한 사회의 중요 요소’라는 믿음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매우 강하다”라며 “사회 구성원 모두 ‘성 평등이 이뤄져야 내가 행복하다’고 믿고, 성 평등 정책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나아가기 위해선 20대 남성의 힘과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권 원장은 "중요 판단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판단의 틀'을 흔드는 노력들이 더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그래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서재훈 기자

권 원장이 최근 일련의 연구를 통해 분석한 20대 남성의 특성은 이렇다. “기존의 가부장적 사고에 많이 빠진 세대도 아니고, 공정함에 기대가 높고, 능력 있는 여성과 함께 산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세대죠.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해의 폭도 깊고요. 이들도 더 이상 보육이나 가사, 가족 관계에서 고립되고, 돈만 벌어오고, 가족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아버지로 살기 싫어해요. 물론 여러 매체를 통해서는 대변되지 않고 있는 면이죠.”

그는 “여성과 관련한 모든 이슈를 피해자나 보호받아야 할 입장으로만 보면서 주장을 관철할 순 없다”라며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가운데 평등, 공감, 탈 서열, 탈 위계적 감수성을 지닌 20대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때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가부장제 그 자체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강요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왜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또 그 주체로서 가장 큰 희망이 엿보이는 세대가 20대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미투 운동의 국면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처한 어려움과 희망의 증거 모두를 발견했다. 권 원장은 “피해자들이 마주한 어려움이나 2차 피해도 많았지만 그걸 극복하려는 논의도 그만큼 활발했고, 우리 사회의 이해수준도 과거보다는 상당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본다”라며 “제일 늦게 따라오는 사법부의 인식도 결국에는 사회의 요구와 변화의 흐름에 맞춰 변하지 않겠느냐”고 진단했다.

“아래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흐름은 상당히 올라왔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따라오지 못하는 일부 의사 결정권자들이죠. 이와 같은 모습을 가진 조직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의사결정과 판단을 흔드는 상층부의 노력이 더 과감하게 이뤄져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세대를 섞든 성별을 섞든, 주요 결정을 하는 위치에서 더 다양한 대안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죠.”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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