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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 쓴 래퍼 마미손 “재밌지만 뼈 있는… 채플린 같은 음악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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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 쓴 래퍼 마미손 “재밌지만 뼈 있는… 채플린 같은 음악 하고파”

입력
2019.01.22 15:00
수정
2019.01.22 18: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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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 마미손은 노래 ‘소년점프’를 부를 때 “한국 힙합 망해라” 대신 요즘 “미세먼지 망해라”로 바꿔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바람으론 “공인인증서 폐지”를 꼽았다. “엑티브엑스(ActiveX) 깔아야 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잖아요. 왜 보안에 대한 책임을 사용자인 개인에 떠 넘기는 지 모르겠어요.” 고영권 기자
레퍼 마미손은 노래 ‘소년점프’를 부를 때 “한국 힙합 망해라” 대신 요즘 “미세먼지 망해라”로 바꿔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바람으론 “공인인증서 폐지”를 꼽았다. “엑티브엑스(ActiveX) 깔아야 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잖아요. 왜 보안에 대한 책임을 사용자인 개인에 떠 넘기는 지 모르겠어요.” 고영권 기자

“복면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쓰고 있나요.” “복면은 제 피부인데요.”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한 음악 작업실. 분홍 복면을 쓴 채 한국일보 인터뷰 사진 촬영을 하던 래퍼 마미손은 좀처럼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철통 방어’를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정체 숨바꼭질’을 끝내기 위한 탐색전은 잠시 휴전. 작업실에 들어가니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 화이트보드엔 래퍼 매드클라운(34ㆍ조동림)의 일정이 버젓이 적혀 있었다. 마미손이 극구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 부인하던, 그 래퍼였다.

“저건 뭐죠.” 그에게 묻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결국 마미손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화이트보드를 향해 걸어가 조용히 매드클라운의 이름을 지웠다. 모두 한통속이었다. ‘누구나 아는 비밀’을 지킨다는 건 몸과 마음이 고단한 일인 듯했다.

마미손은 지난해 방송된 Mnet 래퍼 오디션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서 데뷔했다. 2015년 같은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래퍼 매드클라운이 느닷없이 복면을 쓰고 도전자가 돼 랩을 하다니. ‘복면 래퍼’의 도전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우승자인 나플라 보다 더 주목받았다.

파격은 계속됐다. “한국 힙합 망해라!” 마미손은 ‘쇼미더머니 777’ 탈락 후 유튜브에 공개한 뮤직비디오 ‘소년점프’로 엉뚱함의 끝을 보여줬다. 모범생 같았던 래퍼의 반전에 힙합 팬들은 열광했다.

마미손의 등장은 ‘공장형 K팝’에 잠식된 대중음악계에 혁명과도 같았다. 틀에 갇힌 자기 부정 뒤에야 비로소 가능한 창작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복면을 쓰고 새로운 자아(페르소나)를 만든 뒤 대중 앞에 선 음악인의 실험은 해방감을 줬다. 매드클라운 활동이 그렇게 답답했냐고 물었다.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차, 마미손은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올해 누구보다 기대를 받고 있는 복면 래퍼는 마침 ‘마미손과 친구들’이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래퍼 마미손은 분홍 복면 5개를 갖고 있다. 복면에 귀 부분을 뚫지 않아 듣는 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뚫을 생각은 없단다. "스타일이 망가지거든요." 그의 말이다. 고영권 기자
래퍼 마미손은 분홍 복면 5개를 갖고 있다. 복면에 귀 부분을 뚫지 않아 듣는 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뚫을 생각은 없단다. "스타일이 망가지거든요." 그의 말이다. 고영권 기자

-페르소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마미손으로 데뷔하기 전에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인기 가수로 활동했지만, 점점 음악 활동에 재미가 없어졌다. 음악을 만들 때 (공식에 갇혀) 계산적이었다. 무뎌지다 보니 창작하는 데 스트레스가 쌓였고, 고통스러웠다. 보람으로 여겼던 가치들이 무너졌고 ‘왜 이걸 해야 하지’란 생각까지 들더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정을 즐기는 거였다. 결과물을 낸 이후 반응은 내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과정은 내가 100% 주도할 수 있는 거고. 그렇다면 최소한 즐겁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복면까지 써야 했나.

“이미지가 굳어진 창작자들은 정반대의 시도를 하기 어렵다. 소비자 입장에선 매치가 안 되니까 그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결국 새로운 브랜딩이 필요했다. 답이 마미손이었다.”

-왜 마미손인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게 뭘까 고민하다 복면을 생각했다. 분홍색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시장에 가 8,000원짜리 복면을 사 써봤는데 바로 유명 고무장갑 이름이 생각났다. 그래서 마미손으로 이름을 지었다. 고무장갑 회사에 연락해 그 이름을 써도 되냐고 문의해 허락을 받았다. 처음엔 ‘내가 복면 쓰고 뭐 하고 있나’ 싶었다. 지난해 7~8월 한창 더울 때 복면 쓰고 뮤직비디오(‘소년점프’) 찍는데 죽는 줄 알았다.”

-전설이 된 영국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1947~2016)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 콘셉트로 ‘지기 스타더스트’란 페르소나를 만들어 활동했다. 마미손의 모티프가 된 모델이 있다면.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다. 실없어 보이지만 메시지엔 뼈가 있었으니까. 이중성을 키치(Kitschㆍ통속적인 문화)하게 풀어보고 싶었다. 복면을 쓰는 가수의 행위와 복면 쓴 가수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키치할 수밖에 없으니까.”

-깜짝 히트로 끝날 수 있다.

“부담된다. ‘소년점프’ 이후 새로운 작업물을 공개하려다 말았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매체의 제약 없이 새로운 작업물을 내려 한다. 예술가 지인 6명을 모아 ‘마미손과 친구들’을 꾸렸다. 온라인을 넘어 재미있는 놀거리를 제공해 볼까 싶다.”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음원사이트를 ‘악당’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소년점프’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만 공개하는 줄 알았는데 두 달 뒤에 곡을 음원 사이트에도 공개했다.

“음원 저작권료 수익 분배 비율 조정 문제를 한번 짚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상황도 아이러니다. 음원사이트와 같이 가야 하는 입장이니까. 내가 떳떳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영웅은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음원 사이트에 곡을 등록한 건 저작권료 정산 문제로 한 일이다.” (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곡을 연주한 실연자 등에 저작인접권료가 분배되려면 콘텐츠 ID를 등록 받아야 한다. 실연자협회에서도 가능하지만 음원사이트에서 이 작업을 해 준다. 일반적으로 창작자들은 음원사이트에 곡을 넘길 때 ID 등록까지 같이 맡긴다고 한다. 하지만 마미손은 애초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 뒤늦게 음원사이트에 곡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래퍼 마미손 뮤직비디오 '소년점프' 한 장면.
래퍼 마미손 뮤직비디오 '소년점프' 한 장면.

-’소년점프’ 유튜브 광고 수익을 팬들 여행 보내주는 데 썼다.

“‘소년점프’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뒤 처음 한 달 동안엔 광고를 붙이지 않았다. 그 기간을 제외하면 2,000만여 조회수로 광고 수익이 1,700만원 정도가 발생했다. 이 수익을 팬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여행이라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사연을 보낸 분 중 18명을 최근 뽑아 혜택을 드렸다. 이중엔 도넛맨(매드클라운이 ‘쇼미더머니 5’ 심사위원으로 나왔을 때 제대로 챙기지 못한 래퍼)도 있다. 팬 분들이 즐거워야 내가 돈과 명예를 얻는 거다. 기부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대로 되고 있나(마미손은 ‘소년점프’에서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랩을 한다).

“그렇다(웃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까란 생각도 하고. 마미손이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려면… 방탄소년단 정도까진 (유명해지기) 어려울 거 같다. 요즘 ‘상어가족’ 뮤직비디오에 꽂혔다. ‘상어가족’ 인기를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모르겠다. 유튜브 시대엔 어떤 대중문화 콘텐츠가 통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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