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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플리스(Fleeceㆍ주로 후리스로 불림) 재킷이나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플리스는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파일 직물로 보통 울이나 양털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된다. 1980년대 초반에 개발된 이후 주로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중저가형 플리스가 대거 등장했다. 덕분에 환절기와 한겨울에 많은 이들이 즐겨 입는 필수품이 되었다.

플리스가 인기를 얻는 더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이다. 특히 편리함은 압도적이다. 세탁도 쉽고 관리도 어렵지 않다. 비에 맞으면 그냥 말리면 되고 잘못 세탁했다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일도 없다. 다만 울과 비교해 어느 게 더 좋느냐고 간단하게 말하긴 어렵다. 어떤 사람은 울로 만든, 조금 더 따뜻하고 스웨터 특유의 포근한 느낌을 좋아할 거다. 또 어떤 사람은 가볍고 공기가 잘 통하는 점을 좋아할 수도 있다.

플리스는 ‘친 동물’ 소재로도 주목 받는다. 동물권과 윤리적 제조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패션계 시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양을 키우는 게 그렇게 큰 환경 문제를 만들까 싶지만, 울 의류는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그러므로 대량 사육이 필요하다. 소 낙농업 보다는 환경 오염을 덜 만든다고는 하나 그래도 대량 사육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실제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양떼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사실 그렇게 한가하진 않다. 털 채취용 양은 많은 털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피부 면적이 넓은 체형으로 개량됐다. 즉 전신에 깊은 주름이 있다. 이 때문에 주름 사이에 배설물 등이 쌓여 구더기가 번식하거나 병이 들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대부분의 채취자들이 문제가 생길 부분의 피부를 잘라내 버린다는 것. 이런 걸 ‘뮬싱’이라고 하는데, 뮬싱 때는 마취도, 치료도 하지 않는다. 뮬싱이 상당히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H&M 같은 브랜드는 뮬싱 과정을 거친 울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질랜드는 2007년에 뮬싱을 금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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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는 동물권, 동물 애호의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입지 말자는 ‘모피 금지’가 대표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많은 브랜드들이 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을 정도다. 또 오리, 거위 등의 동물 사육과 채취 문제가 부각되면서 한국에서도 RDS(Responsible Down Standardㆍ책임있는 다운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언론이 다루고 있다. RDS 인증 다운을 사용한다고 광고하는 브랜드도 있다.

최근에는 RWS(Responsible Wool Standardㆍ책임있는 울 기준)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울을 만들어 낸 양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육되었는지 추적하고 비윤리적으로 사육된 양에서 나온 울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몇 군데의 대형 브랜드는 2020년 정도부터 RWS 울만 사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울이 만들어내는 문제 속에서 대안을 찾다 보면 바로 플리스가 떠오르게 된다. 플리스도 합성 섬유인 탓에 제조 과정에서 여러 오염 물질을 만들어 내는 등 비판할 구석이 없진 않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많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버릴 명쾌한 답 같은 건 없다. 관련 정책이 더 많이 만들어지긴 할 테지만,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소비 방식의 재단장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옷을 사 입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에 대해 알아 가며 자신 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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