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 ‘기승전 단종’에 가려진 영월판 ‘춘향전’

강원도 한겨울 추위도 ‘낙화암’에 부서지는 햇살에 살짝 누그러진다. 백제 부여가 아니라 강원 영월의 낙화암 이야기다. 영월 낙화암은 조양강과 오대천이 만나 정선에서 영월로 흐르는 동강 끝자락에 형성된 바위절벽이다. 초입에 한국전쟁 중 산화한 군인ㆍ경찰을 추모하는 충혼탑을 시작으로 영월과 인연이 깊은 이들을 기리는 비석이 줄줄이 이어진다.

영월읍내 뒤편 봉래산 꼭대기에서 본 일몰 풍경. 별마로천문대가 위치한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동강(왼편 아래 큰 물줄기)과 서강이 합류해 남한강이 되어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파악된다. 영월=최흥수기자
◇단종에 가려진 영월판 춘향전

김상태(1862~1911) 의병장 충절비, 엄병연 조합장 공덕비 등은 비석에서 이름이나마 확인할 수 있지만,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예닐곱 기의 비석은 누구의 것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어 군위현감 정사종 충의비, 방랑시인 김삿갓의 호를 딴 난고시비(蘭皐詩碑), 전재규 의사 추모비가 나란히 서 있다. 정사종은 단종이 폐위되고 노산군으로 강봉된 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인사이며, 전재규는 2003년 남극 세종기지에서 순직한 영월 출신 연구원이다. 양지바른 언덕에 영월을 빛낸 인물을 모두 모은 셈이다. 바로 앞으로 동강의 푸른 강물이 흐르고, 온종일 해가 드는 자리이니 영월읍내에서 이만한 풍광을 갖춘 곳도 드물다. 이런 곳에 정자나 누대 하나 없으면 오히려 허전하다. 세종 때 처음 세웠다는 금강정(錦江亭)에 이르면 강은 더 가까워지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층 아찔하다. 금강은 동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금강정을 중심으로 한 낙화암 일대를 ‘금강공원’으로도 부른다.

영월역 인근 동강변에서 본 낙화암. 뒤편 높은 봉우리가 봉래산이다.
영월의 낙화암 혹은 금강공원. 양지바른 언덕에 영월과 인연 있는 인물들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세종 때 처음 세워진 금강정. 금강은 동강의 다른 이름이다.
금강정 뒤편의 민충사. 단종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종인을 추모하는 시설이다.

금강정 뒤편에는 민충사(愍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영월의 문화재와 관광지는 ‘기승전 단종’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자리를 빼앗겨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한 어린 왕의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애절하다. 민(愍)은 ‘가엾이 여기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민충사 역시 단종(1441~1457)과 관련된 시설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충사는 단종의 비보를 접하고 이곳에서 몸을 던진 종인과 시녀를 모신 사당이다. 애초 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넋을 기리는 단을 설치한 자리에, 1749년 영월군수가 사당을 세웠고 그로부터 9년 후인 영조 34년에는 ‘민충’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매년 한식과 단종이 숨진 10월 24일 제를 올리는 곳이다. 산책로 끝부분 시종들이 꽃처럼 몸을 던진 자리에는 ‘낙화암(落花巖)’이라는 표지석과 순절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영월의 ‘낙화암’이 된 사연이다.

순절비와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또 하나의 애석한 죽음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영월 기생 경춘이 순절한 곳,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16살 관기 ‘경춘’의 슬픈 사연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16세의 어린 관기 경춘이 몸을 던진 자리에 ‘월기경춘순절지처’라는 비석이 서 있다.
신임 부사의 수청을 거절하고 핍박 받는 경춘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관기가 된 경춘(본명 고노옥)은 1771년 영월부사로 부임한 이만회의 아들 수학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달콤했던 시간도 잠시, 이듬해 이만회가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둘도 이별을 고하게 된다. 수학은 떠나기 전 ‘훗날 입신해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글을 써서 경춘에게 정표로 남겼다. 그러나 신임 부사 신광수가 경춘의 미모에 반해 수청을 들 것을 요구한다. 수학과의 관계를 이유로 거듭 거절하던 경춘은 볼기를 맞는 형벌을 받는다.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뜻을 받들겠다 하고 며칠의 말미를 얻은 경춘은 아버지 묘소를 찾아 인사를 올리고, 이곳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서 동생과 작별한 뒤 강물에 뛰어내려 한 송이 꽃으로 생을 마감한다. 지인이 시신을 건진 후 옷 속에 꿰맨 자국이 있어 풀어보니, 수학이 건넨 정표가 있었다.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경춘이 죽은 지 23년이 지난 정조 19년(1795) 강원도 순찰사 이손암이 이 이야기를 듣고 ‘비천한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해내다니 열녀로다’라며 영월군수에게 순절비를 세우도록 했다. 비석에는 평창군수 남희로가 비문을 짓고, 영월부사 한정운이 글씨를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장을 짓는 과정에서 사연이 보태지고 아름답게 포장됐을 수 있지만, 기생 경춘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영월판 ‘실화 춘향전’이다. 차이라면 춘향전은 ‘해피엔딩’인데, ‘경춘전’은 엄혹한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억울한 죽음을 맞을 당시 단종은 17세, 경춘은 16세였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나 감당하기 힘든 나이에 권력의 중심에 올랐다가 끝내 죽임을 당한 단종, 흙수저 중 흙수저로 태어나 단 한 번도 꽃처럼 피어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경춘의 사연이 30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장소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의 세태에 비춰보면 ‘경춘순절비’는 단순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정절을 지킨 어느 천한 기생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온 몸을 던진 열여섯 어린 여성의 항거다. 이 겨울, 낙화암을 찾는 발길은 뜸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비석을 포근히 비추고 있었다.

◇또 하나의 영월 키워드 ‘라디오스타’

영월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영화다. 왕년의 인기 스타에서 무명 가수로 전락한 최곤(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영월의 시골 방송국에서 ‘정오의 희망곡’ 프로그램을 맡아 재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MBS로 등장하는 방송국의 실제 모델은 KBS영월방송국이다. 산악으로 막힌 강원도의 특성상 중계소가 많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지만, 한때 인구가 12만명(현재는 약 4만명)에 육박했던 영월과 정선, 평창의 청취자를 위한 방송 수요도 있었다. 1976년 개국해 자체방송까지 제작했던 KBS영월방송국은 2004년 문을 닫는다.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변신한 KBS영월방송국.
박물관 입구 ‘온에어’ 카페는 옛날 라디오 모양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다양한 모양의 옛날 라디오와 주크박스를 전시하고 있다.

방송국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낙화암 바로 뒤편에 자리한 건물은 ‘라디오스타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박물관 외벽의 KBS 간판과 로고도 그대로다. 박물관 내부에선 영화 ‘라디오스타’의 주요 장면을 상영하고, 오래된 희귀 라디오와 주크박스 등을 전시해 놓았다. 방송국에서 실제 사용했던 대본으로 방문객이 직접 녹음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갈 수도 있다.

읍내 중심부 ‘영월종합상가’ 급수탑에는 박중훈과 안성기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초상화 위아래에 쓰인 영화 속 DJ와 매니저의 대사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처럼 시간이 흘러도 잔잔하게 가슴에 남는다.

영월종합상가 옥상에 영화 ‘라디오스타’의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화에 적힌 글귀가 라디오 DJ의 멘트처럼 감미롭다.
서부아침시장 상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메밀전병을 부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전병과 배추전은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자색 고구마로 보라색을 낸 메밀전병. 소를 넣고 돌돌 말면 메밀 전병이 완성된다.
서부아침시장에서 상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메밀 배추전을 부치고 있다.

영월종합상가는 서부아침시장과 붙어 있는 상설시장이다. ‘서부아침시장’은 말 그대로 아침에만 장이 선다고 붙은 이름이다. 동이 틀 무렵 인근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던 시장으로, 싱싱한 채소와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과거 일이 됐다. 그래도 ‘아침시장’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가 뜰 무렵 나가 봤지만, 역시 시장 특유의 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손님은 거의 없는데, 시장 한가운데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30여 점포마다 솥뚜껑만한 프라이팬을 펼쳐놓고 전병을 부치느라 정신이 없다. 얇게 편 메밀반죽에 김치, 양배추, 당면, 부추 등을 버무린 소를 얹고 돌돌 말면 메밀전병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호박이나 자색 고구마 가루를 섞으면 색깔 고운 전병이 된다. 전병이 끝나면, 메밀 배추전 만들기가 시작된다. 옥수수가루로 만든 노란 올챙이국수도 커다란 함지박에 그득 담겼다. 일반적으로 메밀전병, 배추전, 수수부꾸미, 올챙이국수 등은 정선오일장 대표 먹거리로 알고 있는데,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은 영월 서부아침시장이다. 이곳에서 만든 전병과 배추전은 대부분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손님이 없어도 상인들이 새벽부터 바쁜 이유다.

요리골목 초입에 영월 출신 배우 유오성 조각상이 놓여 있다.
한 담벼락에 이태준의 단편소설 ‘영월영감’ 전문이 붙어 있다.
13년의 세월에 요리골목 담장 벽화도 서서히 퇴색되고 있다.

시장에서 나와 영월초등학교 맞은편 일방통행 도로로 접어들면 ‘요리골목’이다. 이름대로라면 식당과 길거리 음식점이 즐비해야 할 텐데, 한가하기는 이곳도 마찬가지다. 요리골목 역시 탄광노동자들로 북적거리던 1960~80년대 유산이다. 2006년 쇠락해가는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담장 그림과 조각상을 설치한 것이 지금 ‘요리골목’의 실체다. 영월 출신 배우 유오성을 본뜬 조각과 작가 이태준(1904~?)의 단편 소설 ‘영월영감’ 전문을 새긴 담장이 그나마 볼거리다. ‘대한민국 공간문화 대상’까지 받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였지만, 13년 세월에 요리골목의 벽화는 또다시 희미해져 가고 있다. 탄광 도시의 영화가 사그라지듯 라디오스타도 그렇게 세월을 입게 될 모양이다.

영월=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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