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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휴 마세켈라(1.23)

입력
2019.01.2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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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권운동가였던 '아프리카 재즈의 아버지' 휴 마세켈라가 1년 전 오늘 별세했다. wikiipedia.org
남아공 인권운동가였던 '아프리카 재즈의 아버지' 휴 마세켈라가 1년 전 오늘 별세했다. wikiipedia.org

휴 마세켈라(Hugh Masekela, 1930~2018)는 ‘아프리카 재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재즈 연주자겸 작곡가, 가수다. 1960~80년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30년간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가 1년 전 오늘(23일) 별세했다.

그는 요하네스버그 인근 탄광 도시 위트뱅크(Witbank)의 콰구쿠아(Kwa-Guqa)에서 태어나 술집을 운영하던 할머니 손에 자랐다. 가게엔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피아노며 이런저런 악기들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고 한다. 14세 때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호른을 든 청년(Young Man with a Horn)’을 본 뒤 트럼펫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성베드로학교(현 성마틴학교)를 다니던 그는, 주먹질과 도둑질이 일상이던 비행청소년이었지만 당시 교사였던 훗날의 ANC(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 올리버 탐보, 가톨릭 반 아파르트헤이트의 구심점이던 트레버 허들스턴 대주교 등이 그를 챙겼다. 그는 교장 허들스턴에게 트럼펫만 있으면 사고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허들스턴은 당시로선 거금인 15파운드를 들여 트럼펫을 선물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트럼펫과 재즈 인생이 열렸다. 10대 말 남아공 최초 청소년 연주단 ‘허들스턴 재즈밴드’를 이끌었고, 50년대에는 ANC 기금 마련 자선공연 등을 스스로 조직할 수준에 이르렀다. 친구 허들스턴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루이 암스트롱이 악기를 선물한 일화도 있다.

1960년 이른바 ‘샤퍼빌 학살(Sharpeville Massacre)’ 직후 백인 정부가 ANC를 불법화하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마세켈라는 그해 영국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망명, 칼립소의 제왕이라 불리는 진보 음악인 해리 벨라폰테 등의 도움으로 ‘맨해튼 음악학교’ 등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텔로니어스 몽크 등 당대의 재즈 뮤지션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공식 데뷔 앨범 ‘Trumpet Africaine’이 1963년 발매됐고, 68년 ‘Grazing in the Grass’는 3주간 미국 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만델라의 석방을 촉구하는, 반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적 노래 ‘Bring Him Back Home’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노래 ‘Stimela’ 등 노래와 연주 음반 등 40여장을 남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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