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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갈라진 연정 틈새로, 노회한 베를루스코니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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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갈라진 연정 틈새로, 노회한 베를루스코니 그림자

입력
2019.01.21 17:23
수정
2019.01.21 20:5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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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복귀를 선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방선거를 앞둔 17일 자신이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의 유세현장을 찾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계복귀를 선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방선거를 앞둔 17일 자신이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의 유세현장을 찾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스캔들의 황제는 적과의 동침 속으로 절묘하게 파고들 수 있을까.

아슬아슬한 연정체제로 유지돼 온 이탈리아 정치권이 한바탕 흔들릴 조짐이다. 집권 연합세력인 ‘오성 운동(5 Star)’과 극우정당 ‘동맹(League)’이 최대 현안인 고속철도(TAV) 건설을 놓고 정면 충돌하면서 내분 상태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갈라진 빈 공간에 최근 정계 복귀를 선언한 ‘추문 제조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쐐기를 박으려는 참이다. 포퓰리즘에 휘둘리던 이탈리아 정치권이 다시 이합집산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TAV는 이탈리아 북서부 산업도시 토리노와 프랑스 리옹 간 270㎞를 잇는 사업이다. 철로가 완성되면 소요시간이 현재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든다. 이 중 60㎞는 알프스 산맥을 관통한다. 이미 터널 공사가 15%가량 진척돼 현실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렵지만, 막대한 비용부담과 환경보호에 대한 견해가 갈려 연정을 흔드는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탈리아는 터널 공사 비용 86억유로(약 11조원) 가운데 35%를 부담한다. 유럽연합(EU)이 40%, 프랑스가 25%를 맡았다. 이탈리아의 경제난을 감안하면 버거운 액수다. 이에 반체제를 표방하는 오성 운동은 지난해 3월 총선에서 TAV 건설 중단을 내걸고 제1당을 차지했다. 지지층을 결집하려면 TAV 사업에서 발을 빼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해 8월 제노아 교량 붕괴로 43명이 숨질 정도로 이탈리아 도로망은 낙후됐다. 마르코 델리 안젤리 오성 운동 의원은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예산이 빠듯한데 지역마다 개선해야 할 인프라를 외면하고 왜 터널에 돈을 쏟아붓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에게 알프스에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를 붓는 것은 환경재앙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극우정당 동맹은 입장이 정반대다. 지지자 대다수가 TAV 건설에 찬성한다. 특히 주요 지지층인 이탈리아 북부 사업가들은 신속한 교통망을 갖춰야 유럽 본토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자동차 대신 열차가 오가면 이전에 비해 환경오염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해외투자를 유치할 호기”라며 가세했다. 건설 중단으로 물게 될 거액의 벌금도 문제다. TAV 찬성 집회에 참석한 의사 마르첼로 몬타나로는 WSJ에 “TAV는 후손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두 정당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이탈리아 최대 재벌이자 3선 총리를 지낸 베를루스코니가 5월 유럽의회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변수로 급부상했다. 2011년 총리에서 물러난 후 2013년 8월 탈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정치활동이 금지된 지 5년여 만이다. 당초 올해까지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었지만, 지난해 5월 밀라노 법원 판결로 족쇄가 풀렸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는 현재 지지율이 8%에 불과하다. 지난해 총선 때의 14%에서 반토막이 났다. 당의 존폐를 걱정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절묘한 수치다. 이탈리아는 연정을 구성해 4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면 집권할 수 있는데, 마침 제2당인 동맹의 지지율이 32% 수준이다. FI와 동맹이 뭉치면 제1당인 오성 운동을 뒤엎고 새로운 연정을 꾸릴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좌파 성향의 오성 운동과 달리 FI와 동맹 모두 우파를 지향하는 만큼 이념적 거리감이 훨씬 덜하다.

이탈리아는 2023년까지 총선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동맹이 연정에서 탈퇴한다면 선거가 불가피하다. 82세의 베를루스코니는 복귀 첫날인 17일부터 이틀간 무려 8곳의 지방선거 유세장을 누비는 강행군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고속철도(TAV) 건설 둘러싼 이탈리아 여론 대립. 박구원 기자
고속철도(TAV) 건설 둘러싼 이탈리아 여론 대립. 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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