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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심의 ‘무늬만 감액’… 지역구 사업 증액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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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심의 ‘무늬만 감액’… 지역구 사업 증액 꼼수

입력
2019.01.21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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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년 심의과정 분석 보고서] 

 나라 빚 이자 예상치 낮춰 삭감… 여유분을 지역 SOC예산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7일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현장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승재 회장, 홍 부총리, 김임용 수석부회장.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7일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현장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승재 회장, 홍 부총리, 김임용 수석부회장. 연합뉴스

국회가 매년 정부가 제출한 나라살림(예산)을 심의하며 수조원대의 예산을 싹둑 잘라내고 있지만, 실상은 ‘무늬만 감액’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갚아야 할 나라 빚의 이자 예상치를 줄이는 식으로 예산을 숫자상으로 깎고, 그만큼 도로ㆍ철도 등 지역 사회간접자본(SOC)의 지출규모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회계상의 감액을 제외하면 최근 12년간 정부가 책정한 예산 규모는 국회 심의를 거치며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우지영 한국지방정치연구소 소장은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근 10년 동안 정부 예산안 및 국회 심의과정에서의 예산변동 사항의 의미, 문제점,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2008~2019년 각 연도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과 국회 심의(각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예산안을 상세 비교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곳간을 많이 풀어야 했던 2009년과 2010년을 제외하면, 매년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연평균 약 4,000억원 순감액(감액-증액)했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대표로서 예산 심의ㆍ확정권을 부여 받은 국회가 예산을 계속 불려나가는 속성을 지닌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삭감한 지출 내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무늬만 삭감’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예산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으로 칸막이가 나뉜다. 가령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휘발유 1ℓ당 529원)로 걷은 돈(약 16조원)의 약 80%는 교통시설특별회계로 들어가 도로ㆍ철도 등 SOC건설에 쓰인다. 담배를 살 때 내는 부담금(한 갑당 841원)으로 조성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은 흡연자 건강관리 예산 등으로 활용된다. 최근 11년간(2009~2019년) 이 같은 각 회계별 예산이 국회 심의를 거치며 어떻게 변동됐는지 살펴본 결과 일반회계에서 가장 많은 4조7,000억원이 늘어났고, 교통시설특별회계(+4조원)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2조원)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1조1,000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들 특별회계가 SOC(교통시설), 지역사업(국가균형발전), 농어촌사업(농어촌구조개선)에 쓰이는 예산인 점을 감안하면, 증액분이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에 추가 배정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무려 약 11조6,000억원의 예산이 삭감됐다. 공자기금은 △각종 기금의 여윳돈을 관리하고 △국고채를 발행ㆍ관리하기 위한 기금이다. 정부 지출보다 수입(세수)이 적을 때 공자기금이 국고채(빚)를 발행하고, 정부가 이 돈을 쓰는 구조다. 당연히 정부는 이 같은 국고채 발행에 따른 이자를 예상해 매년 예산안에 편성한다. 공자기금 예산을 감액한 것은 국고채 발행에 따른 정부의 이자상환 예상치를 국회가 축소했다는 의미다. 정부가 다음연도에 갚아야 할 실제 이자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 ‘회계상 감액’에 불과한 셈이다. 물론 정부가 금리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예측해 이자를 부풀리고 그만큼 예산이 남는(불용) 문제를 막는다는 명분은 있지만 사업규모를 축소해 실제 지출을 줄이는 진정한 의미의 감액이라 보긴 어렵다.

[저작권 한국일보]정부 예산안 변동 내역_신동준 기자/2019-01-20(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정부 예산안 변동 내역_신동준 기자/2019-01-20(한국일보)

이처럼 국고채 이자를 비롯해 △지방교육교부금ㆍ교부세 △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 지급액 등 지출 예상치만 조정하는 회계적 감액을 제외하고 2008~2019년 정부 예산안과 국회를 통과한 최종 예산안을 비교한 결과, 매년 정부 예산안은 국회 심의를 거치려 오히려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안(469조6,000억원)은 당초 정부가 그 해 9월초 국회에 제출한 안(470조5,000억원)보다 약 9,000억원 감액됐다. 여야가 심의 과정에서 5조2,000억원의 예산을 깎고, 4조3,000억원을 늘린 결과였다. 하지만 국고채 이자상환액(정부안 대비 -9,000억원) 등 총 3조5,000억원의 회계적 감액을 제외하면 오히려 전체적으로 2조원 이상의 예산이 증액됐다. 증액 상당수는 도로(+4,500억원) 철도(+5,500억원) 등 SOC에 배정됐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채이자 지출액을 과다 편성하는 것은) 기재부가 국회에 주는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상 국회는 예산을 증액할 권한이 없다. 때문에 국회가 예산안에서 삭감한 감액 한도 내에서 증액이 이뤄진다. 결국 기재부가 국채이자 지출액 등을 많이 편성해 국회가 감액할 공간을 넓혀주고, 그만큼 의원들이 밀실에서 SOC 등 지역구 사업을 증액하는 관행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우 소장은 “회계적 감액은 공식적인 예결위 전체회의 또는 예결특위 소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소위 ‘소소위’라 불리는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예결특위에서 증액과 감액 심의가 동시에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국채잔액이 700조원에 육박해 금리가 0.1%포인트만 올라도 이자 상환액이 약 7,000억 늘어난다”며 “이자 상환예산이 부족해 ‘펑크’라도 나면 예비비를 쓰거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하기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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