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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말 못할 질환’ 변실금, 숨기지 말고 치료하면 웃음 되찾아

입력
2019.01.21 20:00
수정
2019.01.21 22: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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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섭 대한대장항문학회 총무이사(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얼마 전 일흔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병원을 찾아왔다. 오래 전부터 항문에서 치질이 튀어나오고 속옷에 변이 묻어 불편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피도 나오고 변을 참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진찰을 하니 회음부의 피부가 사라졌고 직장과 질 사이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자녀를 3명 출산한 뒤인 40~50년 전부터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 “조금 일찍 병원을 찾지 않고 왜 이제서야 오셨나?”는 질문에 같이 온 따님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실금은 대변 배출의 조절장애로 인해 대변이 항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병이다. 환자에게는 신체적인 불편뿐만 아니라 심하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생기고 사회와 담을 쌓고 살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변을 스스로 참지 못하는 가벼운 증세에서 변이 하루에도 수 차례 나오는 심각한 경우까지 증세가 다양하다. 외국 문헌을 살펴보면 진단 기준과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병률이 1.4~18.0%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내 유병률 자료는 없다.

앞에서 말한 환자처럼 증상이 생겨도 창피하다는 이유로 말하길 꺼리는 분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급격한 고령화 진행으로 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15년 변실금 진단코드의 진료통계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60대 이상 고령환자가 대부분이다.

변실금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대부분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 들어서 근력이 약해지며 증상이 나타나지만 치핵이나 치루수술 후 괄약근이 손상됐을 때에도 발생한다. 당뇨병, 뇌졸중, 척수 손상, 치매 등과 같은 증세가 있어도 생길 수 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 등 염증성장질환, 직장탈출증,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골반에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에도 직장의 순응도가 떨어져 변실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성인 여성이 아이를 분만할 때 생긴 괄약근 손상이다.

변실금 환자는 증상이 다양하고 원인도 여러 가지여서 자세한 병력 청취와 적절한 검사로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식이조절과 약물, 괄약근 강화를 위한 케겔 운동만으로도 증상이 좋아진다.

그래서 초기 증상이 있을 때 숨기거나 무시하지 말고 적절히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증상이 심하다고 너무 실망할 것도 없다.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포함해 괄약근 성형술, 천수신경자극술 같은 치료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만 등으로 인한 괄약근 손상이 원인이라면 초기에 적극적인 수술이 치료에 도움된다.

연전에 필자를 찾아 온 3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생각난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둔 엄마였는데 난산을 했고 분만한 뒤 심한 변실금 때문에 외출도 꺼려지고 특히 자신이 낳은 아이가 밉기까지 하다는 말을 했다. 검사 후 끊어진 괄약근을 복원하는 괄약근 성형술을 받았고 몇 달 후 외래를 방문했을 때 밝게 웃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리고 “이제 둘째를 가져도 되나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변실금은 어쩌면 완치하기 어려운 질환일 수도 있다. 항문은 한번 다치면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건강의 3대 요소라는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항상 항문을 소중히 하고 증상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엊그제 앞에서 말한 70대 중반 할머니를 수술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끊어졌던 괄약근을 연결했고 피부판을 만들어 사라졌던 회음부의 피부를 재건했다. 짧지 않은 회복기간이 필요하겠지만 합병증 없이 쾌차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몇 달 후 밝은 웃음을 상상해 본다.

정순섭 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정순섭 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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