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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정신으로~ 폐업 위기 책방 '풀무질' 이어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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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정신으로~ 폐업 위기 책방 '풀무질' 이어받다

입력
2019.01.18 18:21
수정
2019.01.18 21: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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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커 등 20대 청년들, 성대 앞 33년 지킨 사회과학서점 인수

“책방 지켜 역사 단절 이을 것” 크라우드 펀딩ㆍ독서모임 고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인수하기로 한 ‘20대 3인방’ 전범선(왼쪽), 장경수(왼쪽 두 번째), 고한준(맨 오른쪽)씨가 18일 책꽂이를 배경으로 은종복 풀무질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풀무질 제공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인수하기로 한 ‘20대 3인방’ 전범선(왼쪽), 장경수(왼쪽 두 번째), 고한준(맨 오른쪽)씨가 18일 책꽂이를 배경으로 은종복 풀무질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풀무질 제공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싱글 부문 수상자, 일제강점기 서적을 다시 내놓는 독립출판사 편집자, 미디어아트 강사.

1980년대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회과학서점을 물려받겠다며 나선 이들의,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면면이다. 성균관대 앞 사회과학서점 ‘풀무질’ 공동대표로 내정된 ‘20대 3인방’ 전범선(28), 장경수(29), 고한준(27)씨다.

전씨는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 리더다. 장씨는 미디어아트 강의를 하며 시를 쓰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씨는 독립출판사 ‘두루미출판사’ 편집자다. 두루미 출판사는 지난해 11월 일제시기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 허정수(1902~1991)의 글을 현대어로 번역해 내놓은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회과학서점, 1980~90년대 대학생 아지트

풀무질은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앞에서 1986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서울대의 ‘그날이 오면’과 함께 대학가에서 살아남은 사회과학서점이다. 1980년대 사회과학서점은 사회변혁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눈길을 피해 모여들었던 지식의 해방구였다.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기 직전 개업한 풀무질 또한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해방구이자 아지트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 서점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만 20여 개가 넘던 대학가 사회과학서점들이 하나 둘씩 무너졌다. 1993년 풀무질을 이어받은 뒤 대학가 서점이 사라져선 안 된다는 신념 하나로 버텨낸 은종복(54) 대표도 점차 한계에 부딪혔다. 지난 5년 전부터는 출판사에 주지 못한 돈이 1억원을 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고 봤다.

인수자가 나타나며 폐업 위기를 넘긴 서울 종로구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입구. 정준기 기자/2019-01-18(한국일보)
인수자가 나타나며 폐업 위기를 넘긴 서울 종로구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입구. 정준기 기자/2019-01-18(한국일보)

◇무너지는 서점 이어가겠다는 톡톡 튀는 20대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풀무질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 20대 젊은이 셋이다. 얼핏 보면 30년 역사의 서점과는 이질적인 사람들이다. 로커 전씨만 해도 하는 음악은 로큰롤인데, 한복 입고 수염 기른 채 무대에 선다. 전씨도 “우리가 나섰을 때 은 대표님도 우리가 과연 진지하게 서점을 이어받을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무척 걱정하셨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력을 들어보면 확실한 ‘책쟁이들’이다.

전씨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싱글 부문을 수상했지만,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영국 유학 당시 “역사 있는 책방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전씨는 “그런 책방들은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상의 가치와 중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5년 전 어머니가 춘천에서 작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책방을 하고야 말리라 결심한 적도 있다.

고씨도 밴드 ‘꿈의 파편’의 베이스 연주자다. 공연장에서 전씨를 만나 함께 두루미출판사를 꾸렸다. 친일 연구가로 유명한 임종국(1929~1989) 선생이 쓴 ‘한국 문학의 사회사’가 절판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다시 내려다 전씨와 뜻을 합쳤다. 임 선생의 책은 저작권 문제로 실패했지만, 이후 허정숙의 글을 시작으로 잊혀진 지식인들의 책을 ‘두루미 사상서’로 다시 내고 있다.

풀무질을 원래 알았던 건 아니다. 출판사와 함께 할 서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뉴스를 보고 찾아갔다. 처음 만났지만, 첫눈에 매료됐다. 고씨는 “한길사 시리즈, 까치 시리즈가 쫙 있는 서점은 처음”이라며 “낡은 지하방이었지만 거기 있는 책만으로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한다. 함께 운영할 사람으로 고전과 서점을 사랑하는 장씨까지 끌어들였다. 전씨와 고씨는 “출판을 통해 역사의 단절을 이어보고 싶었는데 풀무질 또한 그 단절을 잇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풀무질 어떻게 운영할까

“책방을 이어 나가겠다고만 하면 책방 빚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은종복 대표가 선언했다지만 앞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보증금 1,000만원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미 각오한 바이기도 하다. 전씨는 “주변 사람들이 진짜 괜찮겠냐고 더 난리들이다”면서 “하지만 어차피 할 책방이었기에 그럴 바에야 풀무질을 이어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운영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다만 풀무질을 “성균관대 학생은 물론, 오래된 단골과 각지의 책 좋아하는 분들을 다 불러모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꿈 하나만큼은 야무지다. 두루미라는 독립출판사를 운영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크라우드 펀딩은 물론, 독서모임 활성화, SNS 홍보, 인테리어 개선 등 아이디어를 짜모으는 중이다.

오랜 단골들은 이들의 인수 소식을 기뻐했다. 성균관대 졸업생인 박강수(27)씨는 “대학 생활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켜준 유일한 곳이 풀무질이었다”며 “폐업 소식을 듣고 씁쓸했는데 인수자가 나타나서 너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하동우(51)씨는 “대학 시절 천안에 살면서도 풀무질에 와서 책을 읽곤 했는데 너무 기쁘다”며 책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풀무질을 물려준 뒤 제주도로 떠날 계획인 은 대표는 “어려운 책방을 맡아줘서 고맙긴 한데 사실 걱정이 더 크다”면서 “20대의 패기로 헤쳐 나가면 뒤에서 열심히 도와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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